"공통과목, 'F학점' 주지 말자"...고교학점 '미이수제'를 어이할꼬

입력
2022.08.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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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 3분의 2 미만, 성취율 40% 미만 미이수자
공통과목에 대해선 '미이수제' 예외로 하자는 주장도

"공통과목은 상대평가도 병행하는데, I등급(Incomplete·학업 성취율 40% 미만, 학점 미이수)을 받은 학생에게 얼마나 보충 지도를 해야 공평할까요?"

"학교가 학생들을 잘 지도해서 I등급을 줄이는 게 아니라, I등급이 나오지 않도록 수행평가 기본점수를 많이 주는 식으로 운영하면 어떡하죠?"

"수업에 관심 없는 학생이 정규 수업에선 I등급을 받고, 3분의 1 분량인 보충 수업에만 참여해서 학점을 받아 가도 괜찮을까요?"

11일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이 서울 중앙우체국에서 개최한 고교학점제 정책 토론회에서 '미이수 등급'에 대한 학교 현장의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2025년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에 따라 수업 출석률이 3분의 2 미만이고, 학업 성취율이 40% 미만인 학생은 I등급을 받아 학점을 인정받지 못한다.

미이수제에 대한 우려가 생기는 이유는 고교학점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상대평가제도'다. 당초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서 석차와 등급을 표시하는 상대평가제 대신, 절대적인 학업 성취 수준에 따라 A부터 E등급을 나눠 매기는 '성취평가제'를 전면 도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신 성적에 절대평가를 실시하면 명문 고등학교가 입시에서 유리해진다는 지적에 따라,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수강하는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공통과목에는 A~E등급(절대평가)과 1~9등급(상대평가)을 동시에 매기기로 했다.

I등급을 받은 학생을 상대평가 대상인 전체 학생에 포함시켜 하위 등급인 6~9등급을 매길지, 아니면 상대평가 '모수'에서 제외할지 등 세부 평가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때문에 I등급 학생은 보충 수업과 과제를 통해 E학점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학생들과의 '우열'을 가려야 하는 상대평가에서 어떤 점수를 받을지 확실치 않다.

그래서 이날 토론회에선 아예 공통과목은 미이수제를 실시하지 말자는 주장도 나왔다. 홍원표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공통과목에 미이수제가 적용될 경우 학생들의 석차등급을 산출하는 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미이수 예방을 위해서 교사가 보충 지도를 실시할 경우 학생들의 등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교사들의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충 지도를 받지 못하는 학생과 보충 지도를 받는 학생 간에 상대평가 '점수 역전'이 발생하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통과목에 상대평가를 유지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내신 성적에서 1~9등급을 나누는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교사들은 시험의 난이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학생이 '꼭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있는가'를 따지는 성취평가제의 취지가 흐려진다는 것이다. 김경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선임연구위원은 "교사들은 (성취평가제와 상대평가) 둘 중 하나에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양쪽을 다 충족하는 건 신의 경지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학교가 I등급 학생 수를 줄이기 위해 기본 점수 비중을 높이거나 시험을 쉽게 내는 '편법' 사용 △학생이 본과목에서 일부러 I등급을 받고, 상대적으로 쉽게 학점을 따는 보충 수업에만 참여할 가능성 △A, B등급을 받기 위해 일부러 I등급을 받고 수업을 대체이수(재이수)할 가능성 등이 발생 가능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교육부는 이 같은 현장의 우려를 반영해 연말까지 고교학점제 개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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