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이념 망각한 인도 모디 정부… 갈등 기폭제 된 독립기념일

입력
2022.08.13 05:00

인도 북동부 아삼주(州) 분리주의 무장반군 ‘아삼연합해방전선’ 독립파(ULFA-I)와 나갈랜드주 무장단체 ‘나갈랜드국가사회주의평의회’ 카플랑파(NSCN-K)는 최근 인도 독립기념일(8월 15일)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독립 75년이 지났지만 원주민은 여전히 수많은 고통 속에 살고 있고, 국가는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인도는 역사적으로 우리와 관련이 없으며 국가로서 존재 가치도 없다”고 일갈했다. 또 북동부 8개 주 가운데 아삼, 나갈랜드, 마니푸르, 트리푸라, 메갈라야 등 5개 주 주민들에게 독립기념일 보이콧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ULFA-I와 NSCN-K는 곧바로 정부군에 대한 공격도 감행했다. 인도 북동부 지역 언론 ‘노스이스트 투데이’에 따르면 두 조직은 9일 새벽 4시 즈음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에서 인도ㆍ미얀마 국경 통제를 담당하는 인도 육군 소속 준군사조직 ‘아삼 라이플’ 부대를 기습했다. 양측 간 총격전이 벌어져 부상자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년간 비교적 조용했던 인도 북동부에서 무장 투쟁이 다시 불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도 북동부는 미얀마, 중국,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인도 다른 지역과 달리 몽골계 외모를 지닌 원주민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인도에선 종족, 종교, 종파, 카스트 등 다양한 갈등 관계가 뒤엉켜 거의 모든 유형의 분쟁이 벌어지는데, 그중에서도 북동부는 ‘종족 민족주의’에 기반한 분리주의 성향이 강하다. 1966년 미조람주에서 ‘미조민족전선’이 출범한 후 2000년대 결성됐다가 사라진 아삼주 소규모 조직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반군조직들이 활동해 왔다.

인도 정부가 이 지역 원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잔혹한 인권 탄압은 분쟁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 중심에는 1958년 제정된 ‘군특별권한법(AFSPA)’이 있다. AFSPA는 정부군이 반군 용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하거나 심지어 사살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동안 북동부 반군들은 ‘AFSPA 폐지’를 협상의 선결 조건으로 강력히 요구해 왔고, 마침내 올해 4월 인도 정부는 아삼주의 23개 구를 비롯해 나갈랜드주와 마니푸르주의 일부 구 등에서 AFSPA를 폐지했다.

그러나 악법이 하나 사라졌다고 해서 곧바로 휴전과 평화가 찾아오진 않는다. 독립기념일 보이콧을 선언한 ULFA-I와 NSCN-K가 상위 조직인 ULFA와 NSCN의 여러 분파 중에서도 정부와의 평화 협상에 부정적인 ‘강경파’라는 점도 간과하기 어려운 변수다.

독립기념일 보이콧은 북동부만의 이슈는 아니다. 인도에서 AFSPA가 적용되는 또 다른 분쟁 지역이자 파키스탄과 영유권 갈등을 겪고 있는 최북단 인도령 카슈미르에서도 매년 8월 15일 독립기념일과 1월 26일 인도공화국의 날이 되면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10일 카슈미르 풀와마 지역에서 사제폭탄 30㎏이 발견된 것도 독립기념일 보이콧 행동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카슈미르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 독립기념일에는 카슈미르 ‘여름 수도’(겨울 수도는 잠무)인 스리나가르 중심가 시계탑에 인도 국기 색인 주황색(힌두교의 상징인 샤프란색), 녹색, 하얀색으로 꾸민 ‘삼색 조명등’이 켜졌다. 반정부 시위 집결지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던 시계탑이 ‘점령국 인도’ 색깔로 물든 광경은 카슈미르인들에게는 치욕이나 다름없다. 이 지역은 인도에서는 이례적으로 무슬림이 주민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힌두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집권 여당 인도국민당(BJP)과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 대한 반감이 크다.

특히 모디 정부가 2019년 8월 헌법으로 보장했던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전격 박탈하면서 주민 불만은 더 커졌다. 인도령 카슈미르 전역을 관할하던 기존 잠무 카슈미르주는 잠무, 카슈미르, 라다크 등 세부 행정구역으로 분할돼 연방정부 직할지로 편입됐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이 지역에 국기 게양 의무화 조치도 내렸다.

올해도 모디 정부는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하르 가르 티랑가(Har Ghar Tiranga)’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르 가르 티랑가’는 ‘집집마다 삼색기(Tricolor in every house)’라는 뜻으로, 8월 13~15일 사흘간 인도 전역 모든 가정에 국기 2억 개가 휘날리게 하는 게 목표다. 캠페인 홍보사이트에는 삼색기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는 국민 참여 공간도 마련됐다.

모디 정부가 국기 게양 캠페인에 이토록 열성인 이유는 자명하다. 200년 식민통치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인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앞세워 힌두 민족주의와 BJP의 정통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모디 정부의 이러한 행보는 이율배반이자 모순이다.

우선, 인도 삼색기의 기원과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민하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교수는 ‘국기 제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식민지 인도의 국가 정체성 형성 과정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1947년 7월 인도 제헌의회에서 채택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인도 국기는 1921년 간디가 주도적으로 고안하고, 1931년 인도국민회의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깃발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21년 간디가 고안한 삼색기는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두 종교를 상징하는 색깔이 같은 비율로 구성되었으며, 물레를 그려 넣음으로써 계층을 초월한 통합의 상징물로 널리 보급됐다.”

이러한 국가 통합의 정신은 BJP가 내세우는 힌두 민족주의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힌두 민족주의가 과거 인도 독립운동에 사상적 기여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는 극우 성향 힌두 민족주의 단체 ‘민족봉사단(RSS)’에 뿌리를 두고 있다. RSS는 1925년 게르만 우월주의를 표방한 독일 나치로부터 영감을 받아 결성된 단체다. RSS가 영국 식민통치에 반대했다거나 실제로 반식민주의 운동을 했다는 기록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1942년 마하트마 간디가 주도한 대규모 시민불복종 운동 ‘인도를 떠나라(Quit India)’로 인도 전역이 들끓었을 당시에도 RSS 2대 지도자이자 힌두 민족주의 사상가인 마다브 사다시브라오 골왈카르는 오히려 “RSS의 일상 업무는 계속돼야 하고 그 어떤 것도 영국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영국에 맞선 독립 투쟁은 RSS가 추구하는 의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는 종교와 문화를 수호함으로써 이 나라 자유를 약속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오늘날 RSS와 BJP를 비롯해 여러 힌두 민족주의 극우 단체들은 삼색기로 상징되는 건국 이념이 포용하고자 했던 이들을 문화적ㆍ사회적으로 소외시키고 타자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북동부 지역 원주민 커뮤니티, 형식적 자치마저 빼앗긴 카슈미르인들에게 ‘독립 75주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디 정부의 국기 게양 캠페인은 그저 펄럭임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삼색기가 또 다른 갈등의 기폭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