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의 명예회복... 법원 "제헌의회그룹, 반국가단체 아냐"

입력
2022.08.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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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제헌의회그룹은 반국가단체"
주도자 최민씨에 고문 후 자백 받아내
재심 개시돼 "위법 수집 증거" 무죄 판단

1980년대 군부 독재에 저항하려고 청년들이 만든 '제헌의회(CA) 그룹'이 재심을 통해 35년 만에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정진아)는 11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했던 최민(64)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최씨는 1986년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 출신 대학생 등과 함께 CA그룹을 만든 혐의를 받았다. CA그룹은 전두환 신군부가 헌정 질서를 문란하게 했으니 혁명을 통해 제헌의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는 CA그룹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최씨를 주도자로 간주했다. 안기부 직원들은 1987년 1월 최씨를 영장 없이 체포한 뒤, 폭행과 고문을 자행했다. 최씨는 고문을 견디지 못해 범행을 인정한다는 취지로 자백했다. 검찰은 최씨를 기소했고, 최씨는 같은 해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2019년 8월 재심을 신청했다. CA그룹은 반국가단체가 아닐뿐더러, 폭행과 고문으로 수집된 증거는 위법하므로 다시 판결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지난해 2월 당시 수사기록 등을 검토한 뒤 재심을 개시했다.

재심 재판부는 결국 이날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씨는 주거지에서 안기부 수사관에 의해 영장 없이 연행돼 불법 구금됐고, 고문·폭행 등 가혹행위를 동반한 불법 수사를 받았다"며 "최씨의 자백을 기초로 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법수집 증거를 제외하더라도 CA그룹이 반국가단체라는 검찰 측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CA그룹의 목적이 무장 봉기에 의한 혁명으로 정부를 전복해 임시혁명 정부를 수립하고 제헌의회를 소집하는 것으로 돼 있다"면서도 "이는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한 의지의 표명으로 국가 반란을 구체적으로 모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최씨 등이 발간한 '무엇이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진군을 막고 있는가' 등의 표현물에 대해서도 "군사 정권은 당시 국민의 기본권인 자유를 억압했기 때문에 이적표현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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