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정부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대형 공공기관장 중 사퇴 의사를 밝힌 첫 사례다. 유사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날 정부와 LH에 따르면, 김 사장은 지난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에게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LH 관계자는 "이번 주 (김 사장이) 직원들에게도 사의를 표명했다"고 확인했다. 16일 '주택 250만 호+α' 공급대책 발표를 앞두고 윤석열 정부의 주택 정책을 이끌어나갈 새 적임자를 찾는 게 맞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김 사장은 2024년 4월까지인 임기를 1년 8개월가량 남기고 떠나게 됐다.
행정고시(35회)에 합격해 국세청장을 지낸 김 사장은 LH 임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직후인 지난해 4월 사장에 임명됐다. 취임 당시 LH 사태를 정리하고 느슨했던 조직을 쇄신하는 데 적격이란 평가를 받았다. 실제 그는 전 직원 재산등록을 도입하는 등 부정부패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만들었고, LH 혁신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직원들이 공식 출장지에서 골프를 치는 등 물의를 일으키면서 ‘기강 해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합당한 문책을 하겠다”고 질책했고, 원 장관 또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 사퇴 결정을 앞당기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LH와 국토부는 다음 주 김 사장의 퇴임 절차를 밟고, 차기 사장을 공모할 예정이다. 후임으로는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부동산 공약을 만드는 데 일조한 김경환 전 서강대 교수와 심교언 건국대 교수, 이한준 전 경기도시공사 사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김 사장을 필두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줄줄이 사퇴할 가능성이 주목된다.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 혁신을 주문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국토부는 28개 산하기관에 혁신안 제출을 지시했고, 원 장관은 개혁 우선순위로 LH,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꼽은 바 있다. 이후 기관들이 내놓은 혁신안이 미흡하다며 "민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혁신안을 다시 마련하고, 8월 중 중간보고를 받겠다"고 밝혔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6월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보통’인 C등급을, 코레일은 ‘아주 미흡’인 E등급을 받은 곳이다.
지난달 초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설계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홍장표 원장과 일자리수석을 지낸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KLI) 원장 등 국책연구기관장들이 현 정부와의 정책 이견과 사퇴 압박 등에 반발하며 사임했던 사례가 공공기관에서도 이어질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