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시행을 한 달 앞두고,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사권 확대를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에선 "맹점이 많았던 개정 법률에 대한 보완책"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상위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법무부는 11일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을 마련하고 이달 29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검사가 수사 개시할 수 있는 부패·경제범죄 범위를 확대하고, 사법질서 저해 범죄와 검사에게 고발이나 수사의뢰하도록 규정한 범죄를 검사의 수사 개시 대상으로 정한 게 골자다.
국회는 앞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검수완박' 관련 법안(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을 공포했다. 9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개정 법안은 검사가 수사 개시할 수 있는 중요 범죄 유형을 기존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에서 ‘부패·경제 범죄 등’으로 대폭 줄여놨다.
법무부의 이번 시행령 개정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법 개정이 어려운 현실적 상황에서 개정 법안의 허점을 파고든 측면이 크다. 법무부는 이날 '부패·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조항의 '등' 표현을 두고 "시행령에 구체적 권한을 위임해 재량권을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해당 표현은 '중'에서 '등'으로 바뀌었다. 민주당은 당시 두 가지 범죄 이외에 시행령을 통한 확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법무부는 이를 다르게 판단한 것이다.
법무부 해석대로라면 상당수 범죄를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 안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 실제로 공직자와 선거범죄 일부가 검사의 수사 개시 대상으로 편입됐으며, 공직자 범죄 중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 범죄 역시 뇌물 등으로 상징되는 부패범죄 유형으로 분류됐다. 선거범죄 중 '매수 및 이해유도' '기부행위' 등도 금권 선거의 대표 유형이란 이유로 부패범죄로 규정해 직접 수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마약류 유통 관련 범죄와 서민 상대 폭력조직·기업형 조폭·보이스피싱 등은 검사가 수사 가능한 '경제범죄'로 정의했다.
법무부는 무고와 위증죄 등이 포함된 사법질서 저해 범죄도 검사의 수사 개시 중요 범죄로 규정했다. 현행 법령에선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해 무고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검사가 수사할 수 없다. 법무부는 또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개별 법률에서 검사에게 고발 또는 수사의뢰하도록 한 범죄도 지금처럼 검사가 수사 가능한 범죄로 규정했다.
법무부는 직급과 액수에 따라 수사대상 범위를 쪼갠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시행 규칙'도 폐지했다. '4급 이상 공무원(뇌물죄)' 또는 '금품수수 5,000만 원 이상(알선수재 등)' 등 검찰의 직접 수사를 제한했던 시행규칙을 "범죄 대응 역량 약화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아예 없앤 것이다.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무력화하려고 대통령령으로 수사 범위를 원위치한다면, 국회와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하위 법령이 상위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고 보고 위법성을 집중 부각시킬 계획이다.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에 대한 법조계 반응은 엇갈린다. "검찰 수사권을 확대할 목적으로 개정 법률 취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평가와 "개정 법률의 입법 미비가 더 큰 문제였으므로 시행령 개정에 절차상 하자를 찾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혼재돼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이 개정되기 전에 부패·경제범죄와 나란히 열거된 공직자·선거범죄 일부를 편입한 부분은 법률 취지에 어긋나 보인다"면서도 "여야가 검수완박법 재개정에 합의해야 논란이 종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