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장신들 홀린 160㎝ 센터백 김민서 "한국 핸드볼 미래 밝히고 싶어요"

입력
2022.08.11 16:30
22면

한눈에 봐도 키가 상대 덴마크 선수들보다 한뼘 남짓 작다. 피봇이나 골키퍼 등 특정 포지션 선수와 비교하면 20㎝는 족히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빠른 몸놀림이 여간 경쾌하지 않다. 수비망을 요리조리 피해 돌파하더니 어느새 상대 문전으로 돌진해 강력한 슛을 꽂아 넣는다. 상대 수비에 막히면 빠른 패스로 다른 공격로를 확보하는 넓은 시야도 갖췄다.

키 160㎝의 대한민국 여자 청소년핸드볼 대표팀 센터백 김민서(18) 얘기다. 김민서는 11일 새벽(한국시간)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열린 2022 세계 여자 청소년핸드볼 선수권대회(만18세 이하) 결승에서 최다 득점인 9골(성공률 69%)을 넣는 등 맹활약하며 31-28로 한국팀의 사상 첫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아울러 득점·어시스트에서도 각각 전체 2위에 오르며 대회 MVP에도 선정됐다.

김민서는 경기 직후 한국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출 시간이 3일밖에 되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면서 “그래도 팀원들끼리 ‘마지막 (만18세 이하) 청소년 대회다. 후회 없이 뛰어보자’고 의지를 다졌는데 우승까지 하게 됐다. 너무 기쁘고 믿어지지 않는다”라며 감격의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김민서로서도, 한국팀으로서도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2006년 1회 대회 이후 8번의 대회(2020년은 코로나19로 미개최)에서 비유럽 국가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핸드볼 본고장인 유럽에서 △스위스 △독일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네덜란드 △스웨덴 △헝가리 그리고 △'숙적' 덴마크까지 핸드볼 강국들을 상대로 8전 전승을 거두며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하는 대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국제핸드볼연맹(IHF)도 결승전 전날인 10일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팀에 대한 소개글에 “개막 전엔 아웃사이더였다. 상대 팀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라고 적었다. 김민서는 “처음부터 우승이 목표는 아니었다. 하지만 강적 독일과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강팀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자신감이 점점 커졌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체격 차가 현격했다. 한국팀 평균 신장은 168㎝다. 8강 상대 스웨덴(175.6㎝)이나 결승 상대 덴마크(174.4㎝)와는 차이가 컸다. 그렇다보니 결승에서 큰 키를 살린 중거리 슛(9m 이상) 득점에서 덴마크에 2-9로 크게 밀렸다. 하지만 스틸(5-0)과 속공(2-0)에선 우리만의 장점을 살렸다. 김민서는 “유럽선수들은 힘도 세고 체격도 좋았다. 특히 덴마크는 슛도 정확하고 공·수 조직력도 좋았다. 내가 공격하기도, 풀어가기도 쉽지 않았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하지만 우리는 패스가 빠르고 정확하다. 또 한발이라도 더 부지런히 움직이려 노력했다. 이 점이 대회 내내 통한 것 같다”라고 짚었다.

높이와 파워를 앞세운 유럽 스타일의 거친 핸드볼이 아닌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 앞세운 한국 핸드볼의 매력에 현지인들도 매료됐다. 북마케도니아 현지에서는 매 경기 관중석에서 한국을 열렬히 응원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특히 김민서가 공을 잡으면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를 연호하는 응원 소리가 더욱 커졌다. 김민서는 “아시아에서 한국이 유일하게 선전했고, 또 새로운 스타일의 핸드볼을 보여드리니 관객들이 더 재미있게 관전하면서 응원하신 것 같다”라며 웃었다.


‘세계 정상’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김민서는 성인 무대에서의 세계 정벌을 꿈꾸고 있다. 그는 “어린 우리들로 인해 한국 핸드볼이 조금이나마 밝아질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하지만 앞으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만20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성인), 올림픽 등 경험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 성인 대표로도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공교롭게도 2024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만20세 이하)도 북마케도니아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 우승을 일궈낸 ‘갓기’(신을 뜻하는 God와 어린 선수를 뜻하는 아기를 합친 신조어)들이 2년 뒤에도 ‘약속의 땅’에서 또한번의 기적을 써 내려갈지 주목된다. 대표팀은 13일 오후 1시 우승 트로피를 안고 금의환향한다.

강주형 기자
최현빈 인턴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