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1916~1956년)이 병마와 싸우면서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주제 가운데 하나는 ‘가족’이었다. 그가 1954년 11월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에게 보낸 편지에는 화가로 성공해서 헤어진 가족과 다시 만나리라는 절실한 소원이 담겼다. 훗날 그에게 가장 중요한 전시로 거론되는 ‘이중섭 작품전’을 두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2년 전인 1952년 이중섭의 아내와 두 아들은 한국전쟁 이후 찾아온 생활고를 덜어보려고 일본으로 떠났다. 한국인의 일본 방문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중섭은 1953년 7월 친구가 마련해준 해운공사 선원증으로 일본을 찾았다. 가족과 헤어진 이후 처음이었는데, 가족 누구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중섭이 가족을 방문한 시간은 딱 일주일이었다.
이중섭의 그리움이 가득 묻어나는 그림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MMCA·국현) 서울관에서 12일부터 내년 4월 말까지 열린다. 2020년 별세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국현에 기증한 작품들 가운데서 추려낸 이중섭 작품 80여 점과 국현 소장품 10여 점 등 모두 90여 점을 선보이는 ‘국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이다. 1950년대 전기에 제작된 ‘닭과 병아리’와 ‘물놀이 하는 아이들’처럼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도 있다. 같은 시기 제작된 ‘춤추는 가족’과 ‘손과 새’는 1980년대 전시된 후 오랜만에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의 작품들을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눠서 소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1940년대에 제작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엽서화 36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대부분 1941년에 그려진 그림들로 이중섭이 연인이던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들이다. 이중섭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소인이 찍혀져 제작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작품들도 존재한다. 엽서화에서도 작풍의 변화가 나타난다. 초기작들은 밑그림 아래 먹지와 엽서를 놓고 밑그림을 눌러서 그렸기 때문에 작품을 구성하는 선이 끊어져 있다. 후기작들은 먹지를 대지 않고 엽서에 선을 바로 그었다.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서 작품 활동을 펼치다가 한국전쟁 시기 월남하면서 작품 대부분을 원산에 두고 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번에 전시된 초기작들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엿보인다.
1950년대 전시공간에는 이중섭이 월남한 후 사망하기까지 제주와 통영, 대구, 서울 등에서 제작한 그림들이 자리 잡았다. 새와 닭, 소, 아이들 가족을 그린 회화와 더불어 책의 삽화와 표지 등 출판미술들도 선보인다. 담뱃갑 포장지를 철필로 긁어내고 갈색 또는 검은색 물감을 뿌린 후, 재빨리 닦아내 그린 은지화도 27점이 전시됐다. ‘춤추는 가족’에선 선보다 면을 이용해 형태를 만들어내는 1950년대 특성이 엿보인다. '손과 새'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에 공개된 작품들에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일부 그림들에는 한편에 ‘태성군’ ‘태현군’이라는 두 아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중섭은 두 아들이 싸울까 봐 편지를 보내면서 그림을 두 장씩 그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작품들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게와 물고기는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제주에 머물던 시기를 투영한 소재다. 이중섭과 가족은 국내에 머물던 시절에도 피란하느라 한데서 잠들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와 물고기는 이중섭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체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