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예능, 부모·자녀 함께 보게 만들었죠"

입력
2022.08.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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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성소수자 예능 '메리퀴어', '남의연애' 공개
기획자 웨이브 임창혁 매니저 인터뷰

성소수자의 일상은 거절, 거절, 거절의 연속이다.

레즈비언 커플은 결혼식을 준비하며 웨딩플래너에게 상담을 요청했다가 번번이 거절당한다. 수화기 너머로 "동성 커플은 가족 반대로 결혼이 끝까지 진행 안 되더라"는 거절 사유가 들려오고, 둘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어린다. 연인과 수영장을 갈 생각에 들떴던 트랜스젠더가 탈의실 사용을 문의하자, 수영장 측은 난감해하며 입장 자체를 거절한다. 국내 최초의 성소수자 예능, '메리퀴어'의 장면들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의 임창혁(38) 매니저는 10일 "드라마나 영화 속 퀴어 이야기는 아무래도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다"며 "잘못된 정보나 환상을 걷어내고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줘 이들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성소수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메리퀴어'는 관찰 예능의 외피를 쓴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국내에서 성소수자는 여전히 금기처럼 여겨진다.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찬성'과 '반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부 종교 단체와 학부모 단체는 프로그램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웨이브 사옥과 웨이브 대주주인 SKT 본사 앞에서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1인 시위 등을 진행 중이다. 임 매니저는 "반발이 예상보다 훨씬 세다"고 했다. OTT라서 그래도 가능했던 프로그램 아니냐는 질문에 "OTT도 성소수자 프로그램은 힘들다"고 한 이유다.

웨이브는 '메리퀴어' 외에, 남남 커플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남의연애'도 공개했다. 시청자에게 익숙한 이성 커플 매칭 포맷을 출연진만 동성 커플로 바꿨다. '남의연애'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TV, OTT 비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 8월 첫째 주 네티즌 화제성 점수 4위를 기록했다. 이 프로그램 역시 임 매니저가 기획했다.

그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반대하는 분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단순히 거부감 때문이라면 프로그램을 보고 판단하시길 권한다"고 했다. "'메리퀴어' 1회에서 MC인 하니씨가 자기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없다'고 하니까, 홍석천씨가 그러거든요. '눈치가 없구나. 분명히 있었을 텐데.' 성소수자들이 지금 너무 음지에만 있으니 곪는 거 같아요. 내 친구가 이런 사람이고 내 일이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혐오하고 차별하는 게 맞는 방향인지 자녀와 같이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출연자에 대한 인신 공격이 이뤄질 위험이 높은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섭외가 관건이다. 다행이자 희망은 MZ세대 성소수자들은 사회의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나'로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임 매니저는 "섭외가 쉽지는 않았지만 다들 '우리 출연으로 제도 개선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며 동의해줬다"며 "출연을 꺼리는 연예인이 많아 오히려 MC 섭외가 더 힘들었다"고 귀띔했다.

MC인 신동엽은 첫 회에 나와 "(섭외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진짜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졌구나 생각했다"고 말한다. 홍석천은 "난 결혼 그런 거 포기했는데 이 친구들은 하겠다는 거 아니냐"며 "나는 '꼰대 게이'"라고 격세지감을 토로한다. 임 매니저는 "메리퀴어는 성소수자의 가장 보편적 이야기를 담았다"며 "'수학의 정석', '성문 기초영문법' 같은 교과서적인 성소수자 콘텐츠인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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