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논의하는 민관협의회가 9일 피해자 측 없이 3차 회의를 가졌다. 외교부가 사전 협의 없이 대법원에 '외교적 노력' 등을 설명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피해자 측 반발을 부른 가운데, 윤덕민 주일대사의 '현금화 동결' 발언까지 논란을 빚으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해법 모색은 더욱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외교부는 이날 오후 조현동 1차관 주재로 민관협의회 3차 회의를 열었다. 정부는 우리 대법원이 조만간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의 압류 자산 강제매각 명령을 확정할 경우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지난달 피해자 측과 각계 전문가, 외교부 등으로 구성된 민관협의회를 만들었다.
이날 회의는 지난달 14일 2차 회의 이후 26일 만에 열렸지만 '반쪽' 행사로 그쳤다. 앞서 피해자 측이 외교부가 지난달 말 대법원에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기만 행위"라며 불참을 선언하면서다.
정부는 민관협의체가 아니더라도 피해자 측에 논의 과정을 최대한 설명하겠다는 방침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른 루트를 통해 의사소통을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해결 방안 모색도 이어지고 있다. 이 당국자는 이날 회의 후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 대법원 판결 이행과 관련한 채권 채무 관계 해소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측 상응 조치와 관련해선 사죄 수위와 방법에 대한 여러 의견이 제시됐다. 또 채권 채무 해소 방안과 관련해 원고 측 동의를 100% 얻지 못할 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전망이 밝지는 않다. 피해자 측이 "'대위변제' 방안을 고려한다면 전범 기업의 기금 참여 및 사과는 필수"라고 마지노선을 밝힌 가운데, 일본 정부나 기업 모두 이에 응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탓이다. 여기에 윤 대사가 전날 경제적 손실 우려 등을 거론하며 "현금화 절차를 동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부와 피해자 측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민족문제연구소는 곧장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일본 정부 눈치만 보기 급급한 정부에 과연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윤 대사 사퇴를 요구했다. 이날 회의에서도 '법리적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서도 누수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 상황을 감안하면 당장은 이견을 좁히기 어려워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달 19일 전 첫 현금화 명령이 확정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심리불속행(대법원이 상고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해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안을 급하게 만들 순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