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엔 집회를 못 갔어요. 철거 현장에 갔거든요. 벌이가 있어야 소액이라도 후원하죠."
지난달 25일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앞에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34회차 집회를 열었다.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의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 주변만큼 시끄러운 건 아니었지만, 7월 한 달간 윤 대통령 사저 주변도 서울의소리 집회 탓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집회 참석자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하다가도, 낯익은 보수 유튜버들이 지나갈 때면 고성과 욕설을 주고받았다. 경찰은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현장을 꼬박 지켜봐야 했다. 8월 들어 폭우로 잠시 주춤했던 집회는 윤 대통령의 한남동 관저 입주를 앞둔 이달 24일 막을 내렸다.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관저 인근으로 집회·시위 장소를 옮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크로비스타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던 이들은 모두 열성적인 서울의소리 유튜브 구독자였다. 한국일보는 이들이 집회에 몰두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한 달 동안 현장을 찾아, 구독자들의 집회 참석길과 귀갓길을 동행했다. 이들은 장기간 이어진 집회로 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겠냐는 우려에 "강남 부자들이 모두 윤 대통령 찍었을 텐데 듣고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견해가 다른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태도는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보수 유튜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집회 장소로 이동하려던 김승민(60·가명)씨를 경기 광명시 자택에서 만났다. 오후 1시쯤 방문한 김씨의 원룸에선 십수 년간 혼자 살아온 흔적이 다수 보였다. 속옷과 양말, 수건들이 현관 밖 옷걸이에 걸려 있었고, 복도 구석에 놓인 페인트통엔 담배꽁초가 한가득이었다. 낮잠에서 깨어난 김씨는 TV로 프로야구를 시청하며 조촐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 있으면 야구 보거나, 진보 성향 유튜브 보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일용직 노동자인 김씨의 일상은 복잡할 게 없었다. 매일 저녁 김씨는 인력사무소와 연락해 다음 날 일거리가 있는지 파악한다. 김씨는 지난달 22일 광명 철산동 건물 철거 현장에서 일당 11만 원을 받고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다. 김씨는 이렇게 일하면서 한 달에 16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했다.
인력사무소에서 연락이 오지 않고 몸 상태도 괜찮은 날에 김씨는 '정치 활동'을 한다. 최근까지 매일 열렸던 아크로비스타 집회에 주로 참석했지만, 이따금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권리당원 자격으로 나가기도 했다.
점심 식사 후 서초동으로 이동하려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김씨는 구독 중인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들을 보여줬다. 국회의원 공식 채널이나 토크쇼 형태의 채널도 있었지만, 가장 즐겨 보는 채널은 별다른 기술 없이도 제작할 수 있는 '현장 방문 라이브' 방송이었다. 김씨는 "법원이든 검찰청이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 따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공장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뒤 노동운동에 동참했다. 김씨는 그때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았다. 결혼했지만, 매일 밖으로 도는 김씨 때문에 부인과 갈등이 커졌고 결국 이혼했다. 그는 "10년 전쯤 부인이 재혼한 뒤로는 자식들과도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그는 광주와 부산, 경기도의 월셋집을 전전하며 홀로 생활했다.
넉넉지 못한 형편과 오랜 독거 생활로 공허함을 느껴온 김씨에게 진보 유튜브는 "우리가 옳다"는 환각을 심어준 듯했다. 김씨는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제도권 언론만 접했다면 대통령 부부 비리를 지금처럼 자세히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보도한 내용을 모두 믿느냐고 묻자 "사실 여부에 대해선 내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면서도 "같은 쪽 사람들이니까 믿는 것"이라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응징 언론'을 자처하는 서울의소리 보도 방식에 대해선 편향적이고 무리하다는 평가도 있다. 지난달 20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백은종 대표는 기자에게 다가와 "윤석열 대통령 바지를 보면 통이 너무 넓은데, 생식기 쪽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취재좀 해보라"며 "언론이 왜 그런 걸 취재하지 않느냐"고 타박했다. 윤 대통령 부부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소재라면 어떤 것이든 취급하겠다는 태도였다.
김씨는 꼬박꼬박 집회를 열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주최 측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옛날엔 큰돈 들이지 않고 현수막만 만들어오면 시위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유튜브 방송하려면 스피커 등이 필요하니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소액이라도 후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유 있을 때마다 서울의소리 후원계좌에 1만 원씩 송금하고 있다. 민주당에 매달 1,000원을 후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작은 돈이 아니었다.
오후 2시 30분쯤 교대역에 도착한 김씨는 곧장 아크로비스타 집회 현장으로 향했다. 찜통더위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노래와 구호소리가 가까이 들려오자, 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도로를 질주하던 운전자가 "시끄럽게 왜 그래!"라며 고함을 지르자, 김씨는 갑자기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차로로 뛰어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친절히 인터뷰에 응해주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경찰에 이끌려 제자리로 돌아온 그에게 "종종 이렇게 싸울 때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저런 놈들은 가만둬선 안 된다. 예전에도 시비 거는 사람들을 때려서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의소리 집회 참석자 가운데 김씨와 같은 장년층 남성들은 소수였다. 경찰이 설치한 펜스 바로 뒤에서 누구보다 장시간 춤추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은 주로 여성들이었다. 중장년층이 다수였지만, 3040 여성들도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20일 열린 집회에선 서울의소리 유튜브 구독자인 한 할머니가 정부 퇴진을 요구하며 현장에서 108배를 했다. 올해 77세로 경기도에 산다는 할머니는 1시간 걸리는 집회 현장으로 1주일 동안 네 차례나 왔다고 했다. 고령의 몸으로 서초동까지 나오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진보 유튜브에서 대통령 부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말해주는데 어떻게 집에만 있을 수 있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의정부에서 왔다는 중년 여성 최순영(66·가명)씨의 출석률은 단연 돋보였다. 7월 한 달간 최씨는 매주 4회 이상 아크로비스타 앞을 지켰다. 최씨는 늘 오후 2시쯤 모습을 드러낸 뒤 오후 4시쯤 또래 여성과 함께 지하철역으로 사라졌다. 지난달 19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최씨는 오후 4시가 다가오자 "아들 밥 차려주러 가야 한다"며 떠날 채비를 했다.
최씨와 함께 귀가하며 물어보니, 그의 하루는 매우 규칙적이었다. 그는 안산에 있는 아들 집과 자신의 의정부 집을 매일 서울을 관통해 남북으로 오간다. 의정부 집을 떠나 아크로비스타 집회에 참석하고, 이후 안산에 들러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새벽에 의정부로 돌아가는 식이다. 이날 교대역에서 아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던 최씨는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봐야 하는데, 이어폰을 안 가져와서 큰일"이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최씨의 일상은 남편과 함께 하던 자영업을 그만둔 뒤부터 확 달라졌다. 그는 "일할 때는 종일 바빠서 정치의 '정'자도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이 3년 전 업종을 바꿔 혼자 일하기 시작하고, 20년 넘게 다니던 교회에도 염증을 느끼면서 최씨는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유튜브를 접하게 된 이유였다.
그는 "사람들이 일 잘하고 호감 가는 정치인을 공격해 불쌍하고 화가 났다"며 "대선 국면에서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신문이나 방송 뉴스는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때 서울의소리가 눈에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결국 최씨에게 필요한 건 본인이 좋아하는 정치인을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이었다.
최씨의 애착은 유명 정치인에게만 쏠리지 않았다. 최씨는 이날 아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집회 후기 글을 쓰다 말고 "커피포트와 김치통 사진을 보여주겠다"며 휴대폰 속 앨범을 뒤졌다. 모두 백은종 대표를 비롯한 서울의소리 직원들에게 챙겨다 준 살림살이들이었다.
최씨는 "꽈리고추나 김치처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반찬을 해다 줬다"며 "노총각 직원들이 여름 휴가를 간다기에 용돈으로 70만 원을 준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날 교대역까지 동행한 박씨의 친구 역시 "극우 유튜버 소음에 밀리는 게 속상했다"며 125만 원짜리 발전기를 사다 준 사정을 들려주기도 했다.
대화가 길어지다 보니, 최씨와 함께 안산의 아들 집 근처까지 동행하게 됐다. 그는 "초심님(백 대표)이든 직원들이든 매일 저렇게 밖에서 활동하면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최씨가 보기에 서초동에 모인 서울의소리 직원들은 안산의 아들, 의정부의 남편처럼 자신이 챙겨줘야 할 대상이었다.
아크로비스타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주최 측에 근거 없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달 15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기자에게 "허리가 아파서 1시간만 서있어도 고통이 밀려오지만,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면 다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성은 주식 투자가 잘 풀리지 않아 현재 서울 영등포의 컨테이너 임시 숙소에서 홀로 지낸다. 하지만 그는 유튜브 덕분에 삶이 외롭지 않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면 잠들 때까지 유튜브를 그냥 계속 틀어놔요. 서울의소리만 보는 게 아니라 진보 쪽은 다 보죠. 그러니 혼자 살아도 외롭다는 생각이 없어요. 주민들에 피해가 가지 않냐고요? 윤석열 찍었으면 감수해야죠."
◆맹신과 후원, 폭주하는 유튜버
1. 평산마을의 여름 한 달간의 기록
2. 팬덤이 쌓아올린 그들만의 세계
3. 불순한 후원금, 선의와 공갈 사이
4. 정치권, 필요할 땐 이용하고 뒷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