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10일 미국 텍사스 휴스턴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에서 스페이스 웨딩(space wedding), 즉 우주 결혼식이 열렸다. 지상 402km 상공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러시아 우주비행사 유리 말렌첸코(Yuri Malenchenko, 1961~)와 미국인 신부 에카테리나 드미트리브 말렌첸코(Ekaterina Dmitriev Malenchenko, 1975~)의 위성 화상 결혼식이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앱솔루트 비기너스(Absolute Beginners)’ 선율에 맞춰 신부는 혼자 입장해 신랑에게 영상 키스를 보냈고, 근무복에 나비 넥타이를 맨 유리 역시 비디오로 화답했다. 우주정거장 동료인 미국인 비행사 에드워드 루(Edward Lu)는 휴대용 신서사이즈로 멘델스존의 ‘웨딩마치’를 연주했고, 나사 강당에 모인 200여 명의 하객이 박수를 보냈다. 예식은 25분여 만에 끝이 났고, 피로연장 신부의 곁에는 신랑 유리의 골판지 등신상이 놓여 있었다.
말렌첸코 부부가 원한 건 이색 이벤트가 아니라 결혼 자체였다. 러 연방 영웅훈장까지 받은 관록의 우주비행사 유리는 나사 교육 중 한 파티장에서 구 소련 이민자의 딸 드미트리브를 만나 연인이 됐다. 문제는 유리가 미국인과 결혼하려면 러시아 공군과 ‘로스코스모스(ROSCOSMOS, 러시아연방우주국)'의 승인이 필요했고, 전망이 썩 낙관적이지 않다는 거였다. 둘은 당국의 승인 없이 유리가 ISS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8월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하고 친지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는데, 로스코스모스가 유리의 임무 기간을 돌연 연장해버린 거였다. 로스코스모스 측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됐지만, 유리의 귀환을 허락하지 않았다.
두 달 뒤 귀환한 유리는 이듬해 6월 모스크바 인근 교회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렸고, 부부는 2006년 딸을 낳았다. 유리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결혼 후에도 2007년과 2012년 ISS 임무를 수행했고, 러시아 우주비행사 훈련센터(CPC)에서 관리직으로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