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관련 부품회사 제이엔비. 안철호 인사팀장의 업무 중 하나는 바로 회사에서 일하는 '군인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 회사 생산라인에 투입된 36명 근로자 중 16명이 산업기능요원. 소위 '병특'이라 불리는 현역과 보충역 자원들이다. 이들은 전방에서 전선을 지키는 대신, 국가가 지정한 회사에서 제조·생산 업무에 종사하며 산업 현장을 지킨다.
제이엔비 생산라인의 산업기능요원 의존 비율(44.4%)에서 보듯, 국내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병특' 없이 공장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생산의 큰 부분을 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다. 가뜩이나 사람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엔 산업기능요원들은 그야말로 금쪽같은 존재다. 안철호 팀장은 "산업기능요원이 병역을 마칠 때쯤 되면 상당히 고급 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며 "병역을 마친 후에도 어떻게든 회사에 잔류시켜 숙련공으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 업체 D사의 경우도 생산 라인을 책임지는 국내 인력은 모두 산업기능요원들이다. D사 인사팀 관계자는 "우리 같은 공작기계 분야는 젊은 사람들이 제일 기피하는 곳이라 인력난이 매우 심각하다"며 "산업기능요원이라도 없었으면 인력 100%를 외국인에게 의존해야 했을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산업기능요원으로 생산인력을 충당하는 '땜질 처방'도 점점 쉽지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다. 산업기능요원은 '군의 필요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병역 자원(젊은 남성)의 일부를 산업현장에서 가져다 쓰는 것이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 탓에 현역으로 입대해야 할 인원조차 부족한 현실이라, 산업기능요원 숫자도 점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33만 명을 넘었던 20세 남성의 숫자는 올해 27만 명대로 감소했고, 내년이면 25만 명대로 급감하게 된다.
정부는 산업기능요원 숫자를 단계적으로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6년 5월 대체복무와 전환복무(의무경찰·의무소방원)를 2022년까지 전면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산업계와 과학기술계의 반발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연간 배정되는 산업기능요원 규모를 4,000명에서 3,200명으로, 전문연구요원을 2,500명에서 2,200명으로 단계적 감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산업기능요원 배정 인원도 올해까지는 3,600명 수준을 유지했지만, 내년에는 3,200명으로 400명이 줄어든다.
윤석열 정부도 이런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병역 자원이 줄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고 병역 의무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 대체복무 배정 인원은 감축하고 복무 관리를 강화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 관련 전문가 사이에선 나라 지킬 인원도 없는 상황에서 산업 현장에만 병역 특례의 혜택을 주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잉여자원이 모자란 상황에서 병역특례 제도를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시대상에 맞지 않는 제도가 존치되면 '특례'가 아닌 '특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선 산업기능요원 문제를 병역자원의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라 산업계 인력 수급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기업계에선 "2만 명이 넘는 산업기능요원이 사라지면 그 자리를 오롯이 외국인으로 채워야 하고, 기술 전수가 단절돼 기업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M사 관계자는 "산업기능요원 제도가 폐지되면 비용을 추가로 투입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며 "인력 수급이야 어찌어찌 되겠지만 장기근속 인력이나 관리자급 인력의 양성은 기대하기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제조업계는 만성적 인력 부족으로 고령자 재고용까지 고민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산업기능요원을 늘리진 못해도 현 인원을 유지해줬으면 하는 게 업계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산업기능요원과 함께 병역특례의 양대 축을 구성하고 있는 전문연구요원(이공계 석박사 대상)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문연구요원의 숫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학계와 연구계에서는 이공계 고급인력의 해외 유출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전기·전자 관련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대학연구소에서 복무한 최모(37)씨는 "이공계 석박사 이상의 인력을 국내에 잡아 두는 효과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2013년부터 3년간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를 마친 김모(35)씨도 "이 제도가 없다면 커리어 때문에라도 해외에서 박사를 하고 영주권을 따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