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는 내용의 당헌 규정에 손을 댈 참이다. '사법 리스크'를 떨쳐내지 못한 이재명 의원이 유력 당대표 후보로 부각되면서 검찰 수사에 맞선 '방탄용' 개정이라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5일 회의를 열고 당헌 80조 ‘기소시 당직 정지’ 조항의 개정 여부를 이달 중순 전당대회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공식 의제로 다루기로 결정했다.
최근 개설한 '당원 청원 시스템'에 이 조항을 개정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친 데 따른 것이다. 민주당은 30일 안에 권리당원 5만 명 이상 청원한 경우 지도부가 답변한다고 방침을 정했다. 지난 1일 올라온 80조 개정 요청 청원은 닷새 만에 6만 건 넘는 당원 동의를 받았다. 시스템 도입 후 지도부가 응답하는 최초의 청원이다.
익명의 청원인은 “검찰 공화국을 넘어 검찰 독재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무차별 기소가 진행될 것임은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80조는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 직무를 즉각 정지하되 중앙당윤리심판원이 '부당한 정치 탄압'으로 판단하면 직무 정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판단 주체를 윤리심판원에서 최고위원회로 바꿔 직무 정지 취소를 쉽게 하자는 것이 청원의 취지이다.
하지만 이번 청원은 여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 의원을 위한 맞춤형 당헌 개정 요구라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의원이 당대표가 될 경우, 한 건이라도 기소가 되면 당대표 직무가 정지되는 상황에 놓이는 만큼 이를 예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 최고 규범인 당헌을 특정인 편의를 위해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당내 반발이 적지 않다. 실제 청원 시스템에는 반대로 80조를 유지하고 강화하자는 내용의 '맞불 청원'이 올라와 3,900명 넘는 동의를 받았다.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선거 패배 이후 '당장의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원칙을 지켜 신뢰할 수 있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반성을 한 민주당이 또다시 특정인을 위해 원칙을 흔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당권 경쟁주자들의 입장은 갈렸다. 박용진 의원은 “부정부패와 싸워온 민주당이 부정부패 범죄에 대한 당적 제재조차 없애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80조 개정 움직임에 반대했다. 반면 강훈식 의원은 "검찰의 기소에 당내 문제를 자동 연계시키는 것이 우리 당을 지키는 방식은 아닐 수 있다는 우려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면서 직무정지 요건을 현행 '기소'에서 '법원의 1심 유죄 판결'로 강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의원 측은 "별다른 입장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28일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이 의원의 사법 리스크 논란에 불이 붙는 분위기다. 이 의원의 해명 방식이 화를 키우고 있다. 배우자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으로 조사를 받다가 최근 사망한 참고인 A씨와 관련한 대응이 대표적이다.
A씨가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기간 김씨의 일정을 함께한 운전기사였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이 의원 측은 "음해와 왜곡"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A씨가 실제 이 의원 캠프에서 운전기사로 급여를 받았다는 정치자금 지출 내역이 후속 보도로 제시되자 이 의원은 "A씨는 김혜경씨의 선행(先行) 차량을 운전했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 의원은 대선기간에도 대장동 수사를 받다 사망한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명했다가 함께 찍은 여행사진이 공개돼 역풍을 자초했었다. 이에 대해 강훈식 의원은 "이런 식의 해명은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