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 5개국 5색 정장... 펠로시의 순방 패션 들여다보니

입력
2022.08.06 19:00



정치인의 패션은 의도보다는 해석이다. 보통 당사자가 의상이나 구두의 색깔에 담은 의도를 직접 설명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언론은 특정 이슈나 소신, 정치적 행보 등을 끌어와 해석하고 대중이 믿는다. 어쩌면 이 같은 해석 또한 의도된 것일 지 모른다. 평상시 패션 코드를 통한 소신 정치로 유명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아시아 5개국(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한국, 일본)을 순방하는 동안 5가지 색깔의 패션을 선보였다. 하루 한 나라를 방문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80대의 펠로시 의장은 투피스 바지 정장 네 벌과 한 벌의 원피스를 공식 석상에 입고 나왔다. 논란과 후폭풍이 적지 않았던 순방 일정 내내 그의 강렬한 패션 코드 또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펠로시 의장은 첫 방문국 싱가포르에선 밝은 회색 투피스 정장에 옅은 갈색 구두를 신었고, 말레이시아에선 아래 위 분홍색 정장 차림에 흰색 구두를 신었다. 이날 같은 복장으로 대만에 도착한 펠로시 의장은 다음날 차이잉원 총통을 만날 때는 흰색 투피스 정장으로 갈아 입고 받쳐 입은 라운드 티셔츠와 마스크, 구두는 하늘색으로 '깔맞춤'했다. 다음날 보라색 정장과 보라색 구두로 통일한 채 방한 일정을 소화한 펠로시 의장은 마지막 방문지인 일본에서 유일하게 바지정장이 아닌 파란색 원피스를 입었다. 역시 구두와 마스크도 파란색으로 맞췄다.


펠로시 의장의 '오색' 패션 중 가장 주목을 끈 것은 대만에서 입은 분홍색과 흰색 정장이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그의 대만 방문을 앞두고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한창 고조되던 2일 밤 펠로시 의장은 말레이시아에 입었던 분홍색 정장차림으로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했다.

대대적인 환영 분위기 속에서 대만 언론은 펠로시 의장의 분홍 정장을 ‘괴롭힘 방지' 또는 '왕따 방지’를 상징하는 복장이라고 전했다. 집단 따돌림 등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캐나다의 '핑크셔츠데이' 캠페인을 끌어온 것이다. 중국이 대만과의 수교 국가에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대만을 고립시키려 애쓰는 상황에서 펠로시 의장이 분홍색 패션을 통해 중국에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펠로시 의장측의 설명은 없었다.



다음 날인 3일 펠로시 의장은 여성인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회담에서 흰색 정장을 입었는데, 이는 여성 참정권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 영미권 여성 정치인에게 흰색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참정권을 뜻하는'서프러지(suffrage)'에 여성을 의미하는 접미사 'ette'를 붙인 '서프러제트(suffragette)'로 불렸고, 그들이 주로 입은 흰옷이 '서프러제트 화이트'로 불리며 여성 참정권의 상징이 됐다.




4일 방한 일정을 시작한 펠로시 의장은 정장과 신발을 보라색으로 깔맞춤한 채 국회의사당을 방문했다. 이날의 보라색 차림을 두고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왔다. 보라색이 '정의와 존엄'을 상징하는 데다, 펠로시 의장이 2007년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그룹 BTS의 상징색인 보라색을 통해 한국 국민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다가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실제 펠로시 의장은 이날 한미 양국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썼는데, 다른 순방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일하나 국기 마스크 패션이었다.

펠로시 의장은 그 동안 화려하고 다양한 패션으로 자신의 정치코드를 당당하게 표현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1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두 번째 탄핵소추안을 가결할 때 상복처럼 보이는 검은 정장을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