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만나지 않은 것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다. 중국은 "예의 바른 결정"이었다며 한국을 추어올려지만, 미국은 "중국 때문이라면 실수"라며 실망감을 표현했다. 한국 정부는 "회동 불발에 중국의 압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4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윤 대통령이 아닌) 김진표 국회의장이 펠로시 의장을 만난 것은 예의 바르게 보이고(looks polite), 국익을 보존하는 조치였다"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뤼차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대면회담을 피했다는 중국 전문가들 분석을 전하면서다.
뤼 연구원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회담했다면 대만 관련 주제가 언급됐을 것이고, 한국 정부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며 "현시점에서 한국은 중국을 화나게 하거나 대만 문제를 놓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최대 안보 동맹국인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게 한국 정부의 최대 과제 중 하나가 됐다"는 분석도 함께 내놓았다.
미국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고위 인사이자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관련해 한국이 필요할 때 목소리를 높여줬던 펠로시 의장을 대통령이 만나지 않은 것은 '한미관계에 대한 모욕'"이라며 "그 의도가 중국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도 "중국을 불쾌하게 할까 봐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은 것이라면 사실상 실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윤 대통령은 동맹국인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엔 강경 노선을 취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인기는 최근 수많은 실책으로 인해 급격히 떨어졌다"며 "미국의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인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은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한국 정부는 두 사람의 회동 불발은 대통령의 휴가 기간과 펠로시 의장의 방한 기간이 겹치는 등 일정상의 이유라며 의미 축소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미 만나지 않기로 결론이 난 것으로, 만나지 말라는 중국의 압박도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윤 대통령이 대면 회동을 피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번 아시아 순방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정상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