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년 전에 캐나다에서 1년간 방문교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둘째 아이도 함께 갔는데 학교에 입학하는 여러 가지 절차가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학기 초에 사인을 하라고 보내오는 서류가 어찌나 많은지 귀찮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서류들 가운데 눈에 띄는 노란색 서류가 있었는데 이 서류는 만약의 사태로 학교가 '폐쇄'에 들어가게 될 경우 아이들은 부모가 직접 와야만 하교할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만약 부모가 연락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한 비상 연락처를 세 개나 적도록 되어 있었다. 무슨 군사시설도 아니고 도대체 학교가 비상사태로 폐쇄되는 일이 있을 리가 있냐고 투덜거리며 그 지역에서 알게 된 지인들에게 어렵게 허락을 얻어 세 칸을 채워 보냈다.
그러던 몇 달 후,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집에서 논문을 쓰고 있는데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은 TV에서 갑자기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긴급뉴스가 떴다. 경찰에 어떤 남자가 소총을 들고 초등학교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어서 그 일대 학교 전체가 '폐쇄'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자세히 보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내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받아보니 둘째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었는데 현재 아이들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으며 경찰이 상황을 정리하고 폐쇄명령이 해제되면 다시 연락할 테니 와서 신원을 확인하고 아이를 데려가라는 얘기였다. 다행히 얼마 후 경찰에 체포된 이 사람이 들고 있던 것이 장난감 총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해제되었지만,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부모들이 신분증을 들고 줄줄이 학교로 찾아가 아이들을 데려와야 했다. 학교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문은 모두 단단한 철문이고, 문을 닫으면 밖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창문도 위에서 내려오는 철제 셔터로 봉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게 지나친 과민반응이고 비용이나 학부모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고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것이고 결국 아무 일도 없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예방은 그 '드물게 일어나는' 일에 대비하는 일이고, 대비한 끝에 아무 일도 없었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아파트 집집마다 배포되어 10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 소화기는 대부분의 경우 사용되지 않고 폐기되지만 그렇게 사용되지 않는 것이 아까운 일이 아니라 다행한 일이듯이.
올해 7월 12일부터 차량이 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 반드시 일시정지하도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 운전을 할 때면 전보다 교통흐름이 느려져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2018년부터 2020년 3년 사이에만 우회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가 212명, 부상자는 1만3,15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오히려 그동안 아무런 대책을 고민하지 않았던 우리가 너무 무감각했던 것이 아닐까 놀랄 수준이다. 불편과 비효율은 우리가 좀 더 안전해지기 위해,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로 가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할 작은 비용이다. 앞으로는 운전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차량용 우회전 신호를 설치하는 교차로도 늘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한번 더 안전을 생각하는 문화가 우리에게도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