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트렌드의 파격 '뉴진스' 돌풍...'기존 걸그룹과 차원이 다르다'

입력
2022.08.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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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걸그룹 뉴진스의 돌풍이 거세다. 기존 걸그룹의 전형적인 데뷔 프로세스와는 크게 다른 파격 행보부터 공식처럼 통용되는 K팝 기획 패턴을 배반하는 신선한 시도까지, 뉴진스의 모든 행보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뉴진스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가 배출한 첫 K팝 그룹이다. 한국·베트남·호주 출신인 민지·하니·다니엘·혜린·혜인 5인 체제로 구성됐다. 멤버들의 나이는 14~18세. 이들이 데뷔 전부터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건 어도어를 이끌고 있는 민희진 대표 때문이다. 그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 레드벨벳 등의 콘셉트 구축과 아트 디렉팅을 맡아 유명해진 인물. 뉴진스는 SM에서 독립한 그가 내놓은 첫 ‘작품’으로, 그룹 이름부터 멤버 구성, 음악 콘셉트, 앨범 패키지, 뮤직비디오, 안무 등 제작 전반을 지휘했다.

뉴진스는 데뷔부터 파격적이었다.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지난달 22일 데뷔 곡 ‘어텐션’의 뮤직비디오를 기습적으로 공개했다. 그룹 이름도 이날 처음 알렸다. 통상 그룹명과 멤버들의 면면, 앨범 수록곡, 뮤직비디오 등을 차례로 조금씩 공개하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존 프로모션 방식과는 딴판이었다. 이후 4가지 버전으로 제작된 '하이프 보이'를 비롯해 7편의 영상을 추가로 공개하는 물량공세를 펼쳤다. 이들의 첫 외부 활동도 TV 방송이 아닌 해외 명품 브랜드 홍보 이벤트 참석이었다.

뮤직비디오를 통한 홍보는 음원과 앨범 시장에서 바로 효과가 나왔다. 4곡이 담긴 데뷔 앨범 ’뉴 진스’의 음원은 1일 발매됐는데 이날 한국 스포티파이 일간 차트 1위에 올랐고, 벅스 실시간 차트 1~4위를 독식했다. 태국 인도네시아 핀란드 등 9개 지역 아이튠스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8일 발매되는 CD는 단 사흘간의 선주문만으로 44만 장을 기록했다. 역대 걸그룹 데뷔앨범 초동 판매량(발매 첫 주 판매량) 1위인 르세라핌의 30만 장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뉴진스 기획의 밑바탕에는 민 대표가 밝힌 헤겔의 ‘정반합’ 논리가 있다. 유행을 이끄는 콘셉트에 대중이 싫증을 느낄 때쯤 반대 콘셉트가 등장하고 둘이 합쳐지면서 정과 반, 합의 연쇄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소녀시대는 이전 걸그룹들의 ‘반’이었고, 에프엑스는 ‘정’이 된 소녀시대의 ‘반’이었듯 뉴진스는 최근 트렌드의 ‘반’인 셈이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아이돌의 전형적인 모습을 탈피해서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도가 뉴진스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고 본다. 뉴진스의 음악에는 요즘 유행하는 강렬한 힙합 비트도, 멤버들 간의 뚜렷한 역할 분담도, 역동적인 칼군무도 없다. 가상 세계와 연결시키는 세계관도 찾아보기 어렵다. 앨범 수록곡은 종종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팝처럼 들린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프로모션을 배제하고 음악 위주로 승부를 걸었다는 건 완성도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라며 “1990년대 팝계의 걸그룹을 연상시키는 음악은 최근 K팝 그룹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장르인데 이런 점이 203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 곡의 작사, 작곡, 편곡에 10명 이상의 창작력을 끌어들이는 최근 집단 창작 방식과 달리 1~3명의 창작자들과 작업한 점도 이색적이다. 올 초 뽕짝을 주제로 한 앨범 ‘뽕’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킨 작곡가 겸 프로듀서 250(이오공)이 앨범 수록곡 4곡 중 3곡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이 앨범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민 대표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첫 음반은 그룹의 성격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중요했고, 첫 음반부터 순위에 연연해 제작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레트로 감성은 뉴진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이들의 데뷔 앨범 CD는 세 가지 버전으로 발매될 예정인데 멤버들의 사진을 모은 핀업북, 포토카드, CD를 원형 가방에 담은 ‘뉴 진스 백’ 버전은 예매 직후 매진될 만큼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민 대표는 “어린 시절 CD플레이어를 항상 들고 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사이즈의 가방이 없어 예쁜 파우치를 찾아 다녔던 기억”에 힌트를 얻어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룹과 팬 간의 소통 애플리케이션(앱)인 ‘포닝’ 역시 폴더폰을 주로 쓰던 2000년대 초반 레트로 콘셉트로 디자인됐다.

자극을 덜어낸 자연스러운 콘셉트도 인기의 요인으로 꼽힌다. 뉴진스는 강렬한 콘셉트나 청순한 하이틴 콘셉트의 의상이 아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의상으로 눈길을 끈다. 음악 역시 힙합이나 EDM(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장르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부담 없이 편히 들을 만하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뉴진스는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로운 세대의 에너지를 잘 표현했다”면서 “4세대 걸그룹 에스파, 아이브와 3파전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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