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서 '너구리 습격 사건' 잇따르자... 서울시, 첫 실태 조사 나선다

입력
2022.08.0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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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개발로 서식지에서 밀려난 너구리들 출몰
6, 7월은 새끼들에게 먹이교육 하는 민감한 시기
서울시 "시민·너구리 공존할 수 있는 방안 마련"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장지근린공원을 찾은 ‘너구리 전문가’ 우동걸 국립생태연구원 포유류팀 선임연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열흘 전쯤 한 주민이 너구리로부터 공격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공원을 찾았지만, 너구리 서식지라고 보기엔 녹지 면적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주변을 한창 둘러보던 그는 인근 위례신도시를 주목했다. 장지근린공원에서 위례신도시 방향을 따라가자 고속도로 교량하부가 눈에 띈 것. 우 선임연구원은 “신도시에 서식하던 너구리들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뒤 교량하부를 타고 흘러와 공원에 터를 잡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근 5년간 구조 포유류 41%가 너구리

최근 서울 도심에서 야생 너구리들이 잇따라 출몰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갑자기 주택가에 나타나 시민 안전을 위협하던 멧돼지의 빈자리를 너구리가 채운 것이다. 야생 멧돼지들은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퍼지면서 대거 살처분돼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

4일 서울시야생동물센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구조된 너구리는 2017년 35마리에서 지난해 81마리까지 늘었고, 올해도 7월 기준 25마리가 구조됐다. 같은 기간 구조된 포유동물 826마리 중 가장 많은 41.7%(345마리)를 차지했다.

우 선임연구원이 찾은 장지근린공원에서는 지난달 17일 50대 여성이 너구리의 습격을 받았다. 생김새가 고양이와 비슷해 접근했다가 돌발 공격을 받고 병원 신세까지 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6월 도봉구와 강북구에서도 너구리가 시민과 산책하던 반려견을 공격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너구리가 사람이나 반려견을 공격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너구리는 극한 상황에 처하면 죽은 척 누워 있는 습성이 있다. 짧은 다리에 비해 몸집이 커 빨리 달릴 수도 없다. 동물 전문가들은 요즘 너구리 습격 사고는 새끼를 독립시키기 위해 먹이를 찾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통 너구리는 3, 4월쯤 새끼를 낳고, 9월에 독립시킨다.

서식지 파괴에 도심으로 몰려와

서울에서 너구리 출몰이 증가한 이유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도심 개발로 서식지가 감소한 탓이 크다. 우 선임연구원은 “몇 해 전부터 발견된 너구리들은 외래종이 아닌 토종 너구리”라면서 “아파트 개발이 너구리 서식지도 잠식해 거리로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거에도 너구리가 난지도와 암사숲지, 북한산ㆍ청계산 주변에서 포착됐는데, 인근에서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송파구 장지근린공원, 강북구 우이천 근처 등도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지역이다.

너구리가 유해조수나 천연기념물이 아니라 개체수가 빨리 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잡식성인 너구리들이 ‘캣맘’ 등이 도심 주택가에 뿌려 놓은 고양이 먹이를 먹으려 위험을 무릅쓰고 민가로 내려왔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서울시, 지자체 최초 '너구리 분포도 조사'

시민 피해가 잇따르자 서울시도 행동에 나섰다. 지자체 최초로 ‘너구리 분포도 조사’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시민 불안을 해소하고, 각종 위협에 노출된 너구리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시 관계자는 “서울 시내 너구리가 어디에, 얼마나 살고 있는지 밀도와 개체수, 서식지 등을 조사할 수 있게 연구 용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시는 자치구별로 너구리 사고신고 건수도 취합하고 있다.

물론 인간과 너구리의 공존은 쉽지 않다. 개과에 속하는 너구리는 광견병 등에 취약해 사람이 섣불리 접근해선 안 된다. 서울시는 “분포도 조사가 완료되면 너구리 습성을 알리는 현수막 등 시민 인식 개선 운동 등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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