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관리 시립병원서 간호사 13명 집단감염... '자율방역'의 현주소

입력
2022.08.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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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지침에 의료진 대책 의료기관 자율 맡겨
병원 측 "자체 BCP 따라 대체자 미리 설정해"
정작 현장선 '인력 돌려막기'·결원 운영 비판

서울의 한 시립병원에서 간호사 13명이 한꺼번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됐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우려되던 의료진 ‘집단감염’이 현실화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병원은 인력이 줄자 다른 부서 간호사를 데려다 쓰거나 건강한 간호사들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등 ‘땜질’ 처방에 급급했다. ‘자율방역’ 시행의 부작용인데, 의료진을 보호할 매뉴얼과 대책은 전무했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의 같은 층에 위치한 2개 병동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3일까지 간호사 1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격리됐다. 평소 이곳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36명(A병동 19명, B병동 17명) 중 3분의 1 넘게 감염돼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병원의 후속 조치는 이랬다. 보라매병원 노동조합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는 B병동 간호사가 대거 확진되자 1일 저녁 근무 대체 인력 2명을 요구했다. 병원은 다른 병동 소속 간호사 1명만 차출했다. 그 결과, 4명이 정원인 해당 병동 저녁 근무에 3명만 투입됐고, 회진 등 업무 전반을 지원할 간호사 없이 근무가 실시됐다.

A병동에선 간호사가 간호조무사 일을 대신하기도 했다. 평소 이 병동의 야간 근무엔 간호사 3명, 간호조무사 1명 등 4명이 투입된다. 그런데 간호조무사가 코로나19에 걸리자 대체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간호사 1명이 기저귀 갈기, 체위 변경, 식수 뜨기 등 조무사 업무를 전담한 것이다. 병상을 돌보는 나머지 2명의 간호사 역시 밤새 격무에 시달린 건 마찬가지다.

사실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센 만큼, 의료진 집단감염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병원은 미온적으로 대응했고, 대가는 고스란히 현장 의료진이 치른 셈이다.

정부는 올해 3월부터 의료진이 코로나19에 확진되면 대응을 병원 자율에 일임하고 있다. 현장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말이 자율이지 사실상 ‘의료진 갈아끼우기’로 겨우 버틴다는 것이다.

정부 지침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배포한 ‘코로나19 의료기관 감염예방ㆍ관리 지침’에는 의료진 확진 시 △진료 우선순위 적용 및 필수기능 외 업무 축소 △직무 대행자 지정 등 비상인력 운영계획을 수립하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내용이 모호한 탓에 가이드라인은 있으나마나다. 보라매병원만 해도 가용 인력이 태부족이지만, ‘필수기능 외 업무 축소’ 권고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혜정 서울대병원분회 부분회장은 “기본 업무량은 줄지 않으니 간호사들만 쥐어짜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환자ㆍ의료진 건강권 보호를 위해 신규 입원이라도 중단하자고 제안했으나 병원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3, 4일 병실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그제야 입원을 중단했다고 한다. 김 부분회장은 “과거 오미크론 대확산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의료진 감염 대책을 기관 자율에만 맡기는 건 사실상 ‘의료 붕괴’를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재범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감염병 폭증세에도 정부는 여전히 의료기관에 세부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다”면서 “격무와 감염우려로부터 현장 의료진을 보호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입장을 묻는 질문에 보라매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은 정부의 BCP(업무연속성계획) 지침을 이행한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나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