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지지 얻었지만… 불안감 커진 대만

입력
2022.08.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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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방문으로 대만에 전쟁 공포 확산
여론조사서 응답자 3분의 2가 불안 호소
중국 보복 단행… 대만 포위·수출입 규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구두 지지를 얻은 대가는 컸다. 펠로시 의장이 3일 떠나자마자 대만엔 군사적·경제적 후폭풍이 덮쳤다. 중국은 군사훈련을 구실 삼아 대만을 무력으로 에워쌌고, 기업들에 경제 보복도 단행했다. 전례 없는 위협에 대만 사회는 공포에 휩싸였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 여파가 얼마나 크고 오래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대만인 다수는 현상유지 바라는데…

2일 대만에 도착한 펠로시 의장은 환대와 야유를 동시에 받았다. 대만인 수백 명이 공항과 호텔 앞에서 펠로시 의장을 반겼지만, 건너편에는 “펠로시 의장은 전쟁광”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서 “미국인은 꺼져라(Yankee go home)”라고 외치는 시위대도 있었다.

중국의 위협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처지에 대한 대만인들의 시선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뜻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둘러싼 대만인들의 인식은 외부에서 보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올해 6월 대만국립정치대학 설문조사에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답변은 5.2%, 중국과의 통일을 요구하는 답변은 1.3%에 불과했다. 절대다수는 어떠한 형태로든 ‘현상 유지’를 바랐다.

그러나 ‘현상 유지’로 정의됐던 양안 관계는 더는 존속되기 어렵게 됐다. 주중 미국 대사를 지낸 로버트 데일리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산하 키신저연구소 소장은 “지금 이 시기에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미중 관계의 안정이나 미국의 이익, 대만 국민의 안보 증진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최근 대만연합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펠로시 의장의 방문으로 정세가 불안정해졌다는 답변은 3분의 2가 넘었다. 라디오 방송들은 전쟁 대비책과 탈출 방법 등을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했다. 당장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은행에서 거액의 예금을 인출하는 사례도 많이 목격됐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중국의 군사ㆍ경제 보복 시작… 곤경에 처한 대만

중국의 보복은 이미 시작됐다. 중국 군용기들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으로 향하던 2일 밤 ‘대만방공식별구역(ADIZ)’을 넘나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군함들은 양국 간 비공식적 국경선인 ‘중간선’에도 근접했다. 4일부터는 군사훈련과 실탄사격도 하겠다고 예고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훈련 해역 6곳을 연결하면 대만 섬은 완전히 포위된다.

사이버 공격도 잇따랐다. 펠로시 의장 도착 직전 대만 총통부 웹사이트가 디도스 공격을 당했고, 국방부와 외교부, 공항 홈페이지도 먹통이 됐다.

대만 경제는 특히 위태롭다. 중국은 대만 식품회사 100여 곳을 겨냥해 전격적으로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대만에 대한 건축자재용 천연모래 수출도 중단했다. 대만 독립 지지 성향으로 분류한 대만민주기금회와 국제협력발전기금을 제재 대상에 올리고, 두 단체에 기부한 대만 기업과의 교역도 금지했다. 수출입 의존도가 큰 대만 경제에는 상당한 타격이다. 더구나 중국은 대만의 최대 교역국이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1991~2021년 사이 대만이 중국에 투자한 금액은 1,935억 달러(약 253조7,000억 원)에 달했다.

미국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의 보니 글레이저 아시아 담당 국장은 “중국이 힘과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은 무수한 방법으로 대만을 처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드 홀 영국 옥스퍼드대 중국센터 교수도 “미국은 우유부단하게 보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그로 인해 갈등의 소용돌이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