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美, 머리 깨져 피 흘릴 것"... 펠로시발 미중 관계 격랑

입력
2022.08.0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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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아슬아슬하게 봉합 상태를 유지해온 미중 관계를 요란하게 흔들었다.

격앙된 중국은 3일 대만 섬 인근 해역에 군사훈련 구역을 설정, 미국 보란듯 주권 행사에 나섰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미국은)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미국은 중국의 자중을 요구했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됐다고 판단한 중국의 '대만 통일' 의욕은 더욱 노골화할 전망이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이자 의회 수장인 펠로시 의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권과 법치를 무시하고 있다"며 3일 대만 한복판에서 중국을 공격했다. 펠로시의 대만행에 부정적이었던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결정을 존중한다"며 선을 넘는 중국을 우회 압박했다.

올해 가을 주석 3연임 확정을 기다리는 시 주석과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 모두 '유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여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중 모두 정면충돌은 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중국의 군사 대응 수위가 사태 확산 여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최근 전화 회담에서 "대면회담을 하자"고 합의한 상태다.

中 대만 초근접 해역서 실탄 훈련...군사 주권 행위

중국군은 전례 없는 '대만 포위 사격 훈련'을 예고했다. 대만을 담당하는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사령부는 오는 4~7일 대만을 둘러싼 해상 구역 6곳에서 실탄 사격을 포함한 군사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통보하고 선박과 민간 항공기의 진입을 금지했다.


중국군이 설정한 훈련 구역 6곳 중 남서부 훈련 구역은 대만 본섬과 불과 9해리(약 16㎞) 떨어져 있다. 수도 타이베이와 인접한 북부 훈련 구역 역시 12해리(약 22㎞) 거리에 불과하다. 대만 연합보는 "남쪽 가오슝 앞바다의 실사격 훈련 구역은 1996년 2차 대만 해협 위기 당시 훈련 때와 비교하면 크게 확장된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의 영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영해에 해당하는 12해리 이내에서의 군사 활동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펠로시 의장의 방문 직후 12해리 이내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 대만의 영해를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남중국해 영유권 공고화 작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왕장위 홍콩시립대 교수는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중국은 펠로시의 방문을 대만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며 "군용기의 대만 영공 진입이나 군함의 대만 영해 통과 등이 중국이 사용할 카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대만 영공과 영해에서 군사 주권을 행사하려 할 것이란 뜻이다.

100여 개 식료품 대만 수입 중지...경제 보복 시작

대만 국방부는 "중국의 훈련은 대만 영토를 침범하고 대만의 영공과 해상을 봉쇄하는 것과 같다"며 "유엔 규정을 위반한 훈련"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나 대만은 중국을 저지할 현실적 '힘'이 없다.

중국은 경제 보복을 즉각 시작했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사실상 확정된 이달 1일 대만산 차, 과자 등 100여 개 브랜드 제품의 수입을 일시 중단한 데 이어 3일 감귤류, 냉동 전갱이, 냉장 갈치 등의 수입도 막았다. 중국 국무원 산하 대만판공실은 대만민주기금회와 국제협력발전기금회를 '타이두(臺獨·대만독립분자) 기구'로 규정하고, 이들 단체의 중국 내 활동과 관계자 입국을 금지했다.

이에 올해 중간선거 직후 정계 은퇴 가능성이 거론되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이 대만에 실질적 이익은 주지 못한 채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백악관은 중국의 추가 반발을 우려한 듯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의회 지도자들의 대만 방문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번 방문은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며 중국이 극단적으로 반응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야당인 공화당 상원의원 26여 명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을 환영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미국 여론은 대체로 '펠로시 지지'로 기울었다.

"중국, 대화보다 실력으로 대만 접근할 것"


미중 간 긴장의 파고는 쉽게 진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말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됐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28일 양국 정상 통화에서 시 주석이 "불장난으로 불에 타죽을 것"이라며 강한 경고를 보냈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으로선 대화는 할 만큼 했고, 이제 '실력'으로 대만 통일을 이루겠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중은 이달 3~5일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계기 미중 외교장관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로버트 데일리 우드로윌슨센터 산하 키신저연구소장은 CNN에 "이번 사건은 미중 관계가 개선보다 대립에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제공한 새로운 기준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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