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배수가 극중 부녀로 호흡한 박은빈에게 진심이 가득 담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우영우'에서 전배수의 역할은 결코 적지 않다. 한평생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느꼈던, 마치 평행선상에 서 있는 딸을 아끼고 또 사랑하는 아버지 우광우가 있었기에 시청자들은 우영우를 더욱 사랑할 수 있었다.
최근 전배수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나 지난 18일 종영한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와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세상 속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겪는 성장기를 다뤘다. 극중 전배수는 전도유망한 법대생에서 미혼부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딸바보 아빠로 열연을 펼쳤다.
전배수는 지난 2004년 드라마 '알게 될 거야'로 데뷔한 후 '우영우'를 통해 국민 아버지에 등극했다. '비밀의 숲' '쌈 마이웨이' '동백꽃 필 무렵' '철인왕후' '지금 우리학교는' 등 소시민 캐릭터를 주로 맡았고 대중에게 친숙한 연기자다. 올해로 연기를 시작한 지 19년 차가 된 전배수는 글로벌 드라마의 연속 흥행을 이끌어내면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게 됐다.
첫 방송 이후로 입소문을 탄 '우영우'는 흥행을 넘어 신드롬이 됐다. 전배수 역시 인기를 실감한다면서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흥행할 줄 몰랐다. 인기를 누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좋아하니 좋다"면서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이야기에서 우영우의 든든한 조력자로 나선 전배수는 주연 못지않은 책임감을 드러냈다. 자폐인을 홀로 키우는 미혼부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주변 실제 자폐 아동을 키우는 부모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단다.
전배수는 대본을 4부까지 읽은 후 출연을 결정했다. 그가 '우영우'에 합류하게 된 이유는 글에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전배수가 바라본 '우영우'의 흥행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묻자 "이 드라마는 설명도 없다. 아주 짧은 장면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전개도 빠르고 센스도 좋다. 특히 딸의 눈높이에 맞다.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겪는 인물의 갈등이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어렵지 않냐"고 느낀 바를 전했다.
여기에는 극을 이끄는 박은빈에 대한 감사함이 꽤 컸다. 전배수는 방송 초반 촬영장에 가자마자 박은빈과 감독님에게 큰절을 했다고 말해 취재진을 웃게 만들기도 했다. "은빈이가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잘 해요. 오미크론이 절정에 달았을 때 본인이 코로나에 걸려서 촬영이 중지될까봐 밥도 혼자 차에서 먹었어요. 쉬는 시간에는 사람과 접촉을 안 하려고 했죠. 굉장히 외롭고 힘든 일이에요. 연기를 떠나서 친구가 이 작품을 멈추게 해선 안 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게 너무 고마웠어요.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박은빈을 향한 전배수의 애정 어린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전배수는 박은빈의 대사량에 감탄하면서도 자폐인의 아버지를 연기하는 것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자폐인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박은빈은 눈이나 몸짓에서 생각을 드러내지 않게끔 연기했고 상대 역이었던 전배수에게 다소 부담이 됐던 것이다.
극 초반 한 톤으로만 연기하는 박은빈 앞에서 전배수는 한동안 자신의 톤을 잡지 못했다. 그간 상대방의 톤을 보며 연기하고 극을 완성했던 까닭이다. 당시를 두고 "벽을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면서 홀로 극복해야 했던 고민을 고백했다. 배우의 이 고민은 어느 순간 캐릭터와 동화됐다. 이야기 속 우광우 역시 자기만의 세계를 사는 딸과 함께 살면서 외로움을 털어놓던 장면이 있었다. 전배수는 확신이 흔들릴 때마다 우광우의 외로움을 떠올리면서 불안감을 이겨내려고 했다.
흥행을 떠나 '우영우'는 전배수에게 남다른 의미를 남겼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늘상 맡던 홀아비 역할'이지만 역할의 크기가 전작들과 전혀 다르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이전과 연속선상에 있다고 느껴질 법도 하지만 책임감과 맡은 각오가 남달랐다.
우광우라는 인물이 단순히 우영우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태수미(진경)과의 옛 인연, 또 자폐인을 홀로 키우는 끝없는 외로움, 또 자식의 좌절을 보고 싶지 않은 부성애까지 깊은 감정들이 표현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의 대본을 봤을 땐 제가 늘상 했던 아빠가 아니었다. 역할의 크기가 굉장히 다르다. 내가 잘 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에는 기대는 곳이 많았다. '철인왕후' 땐 신혜선, '쌈 마이웨이' 땐 김지원에게 기댔다. 하지만 여기선 기댈 곳이 없더라"고 말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인터뷰 도중 '지금 우리학교는' 이후 '우영우'까지 히트를 치면서 전배수의 전성기가 아니냐는 농담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전배수는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좋다.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지금 우리학교'가 글로벌 1위를 했는데 '우영우'로 2위에 올랐다. 한 해에 하나씩 터져야 하는데 제 운을 다 쓴 게 아닐까"라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저는 매일이 전성기라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에도 전성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능력의 한계가 어딘지 잘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