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간다던 러시아 경제 붕괴하고 있다"...전쟁 판도 바뀌나

입력
2022.08.02 21:00
17면
미 예일대 연구진 보고서
"서방제재, 러 경제 타격"...기존 통설과 정반대
"방대한 데이터로 연구"...러, 장기전 가능할지 의문

러시아 경제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해진 서방 제재로 붕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인도 등에 기름을 팔아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알려진 지금까지의 사실과는 정반대 해석이다. 이 분석이 맞는다면 겨울이 다가올수록 러시아에 유리할 것이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도 뒤바뀔 수 있다.

"러시아 통계 못 믿어"… 실물경제 박살

1일(현지시간) AFP통신은 제프리 소넨필드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진의 보고서를 인용해 "(서방)제재는 러시아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118쪽 분량의 보고서는 최근 러시아 경제 상황에 드리운 낙관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에 나선다. △대(對)유럽 수출입 통계 △석유·가스 월별 생산량 △자본 유입 및 유출 등 주요 자료가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러시아 입맛대로 선별된 통계를 기반으로 한 잘못된 예측이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우선 러시아의 실물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공급 부족과 물가 상승,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소비자 지출과 소매 매출이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외국기업과 고급 노동력의 '엑소더스(이탈)'는 부담을 더한다.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책임지던 약 1,000개의 외국기업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거나 축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러시아 고용의 12%인 5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고도의 교육을 받고, 기술적으로 숙련된 인력 50만 명도 러시아를 떠났다.

제일 큰 타격을 받은 분야는 자동차 산업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부품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에어백이나 잠김방지 브레이크 장치(ABS), 안전벨트 등이 없는 자동차가 생산되는 실정이다. 외제차 판매는 완전히 중단됐다. 보고서는 "러시아 내수 경제는 떠나가 버린 외국기업과 수입품, 인재를 대체할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완전히 멈춰 섰다"고 평했다.


에너지 시장도 러시아에 불리...우크라전 판도 바뀔지 관심


보고서는 유럽에 무조건 불리한 것으로 보이던 원자재 시장도 러시아 목줄을 죄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은 천연가스 수입의 46%를 러시아에 의존하지만, 러시아 역시 천연가스 수출 물량의 83%를 유럽에 공급해, 장기적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 국영 에너지회사 가스프롬의 지난달 생산량은 전년 대비 35% 이상 줄었다. 보고서는 "유럽에 훨씬 더 의존하는 러시아가 더 큰 중기적 위협에 놓이게 된다"며 "전 세계의 가스 수요보다 러시아는 더 많은 세계 시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러시아가 제재 타격을 고유가로 상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러시아는 우랄유를 배럴당 35달러 저렴한 전례 없는 가격으로 중국과 인도에 팔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남는 게 없는 장사라는 얘기다. 오히려 "원자재 공급국으로서의 신뢰를 잃으면서 에너지 패권국의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시장도 악화하고 있다. 6,200억 달러에 달했던 외환보유액도 절반인 3,000억 달러는 동결된 상태인 데다 나머지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750억 달러까지 무서운 속도로 줄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번 결과에 대해 "기업과 은행, 러시아 무역 파트너 등으로부터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도 단언했다.

보고서 분석이 맞는다면, 서방 제재 균열을 기대하며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는 러시아 전략은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서방이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에 손을 들기 전에, 러시아 경제가 더 먼저 무너진다면 러시아가 전쟁을 수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장도 지난 4월 "서방 제재가 이제 실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3분기가 되면 러시아에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권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