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도 사람이 넘쳐난다. 오토바이와 차량으로 빈틈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꽉 막힌 도로에서 겨우 빠져나오면, 공원과 호숫가에는 운동하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주말 주요 휴양지 역시 빈 객실 없이 꽉 찼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쓰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쓰지 않았다고 힐난하는 시선 또한 없다.
불과 5개월 전에는 정반대였다. 도로에는 그 흔한 그랩(동남아 승차공유서비스) 배달 오토바이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필수 인력에만 도심 통행 허가증을 발급했고, 지역 경계를 벗어나려면 코로나19 음성 확인서까지 있었어야 했다. 모든 공터에는 붉은 '출입금지' 줄만 을씨년스럽게 처져 있었다.
같은 나라가 맞는 건가. 급격한 변화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이질감이 들지만, 현지 매체들이 외치는 '희망가'에 파묻혀 비판적 시선은 점점 희미해진다. 방송과 신문 대부분이 정부부처 산하로 예속된 베트남에서는 요즘 '전염병에서 해방된 베트남', '성장하는 세계의 중심' 등의 뉴스 키워드만 울려 퍼지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수치를 통해 '위드 코로나(일상 회복)' 정책 강화를 합리화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지난달 전국 코로나 확진자 수 합계는 2만3,834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염병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해 7월(13만3,008명)의 17.9% 수준이며, 최악의 감염세를 보였던 지난 3월(612만1,124명)과 비교하면 25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모든 발표에는 "이 같은 결과는 오롯이 당과 인민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자화자찬도 곁들인다.
베트남은 관광과 수출입 지표에서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트남은 2020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공식적인 외국인 관광객 입국 숫자가 '0'이었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 정책이 본격화한 지난 4월 7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베트남을 찾았고, 지난달에는 18만5,000명까지 급증했다.
2020년 4월 361억 달러로 급감했던 월간 수출입 물량 역시 지난 5월 637억 달러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같은 기간, 80억6,000달러까지 쪼그라들었던 외국인직접투자(FDI)도 140억3,000달러로 껑충 뛰었다. 마스크 없이 자유롭고, 관광과 경제 전망 모두 더없이 밝은 베트남. 그 어디에도 전염병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글로벌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베트남이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현지에 진출한 9,000여 개 한국기업과 10만여 명의 교민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지만 이런 수치와 지표에 숨겨진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베트남의 '코로나 민낯'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선전전이 베트남을 '코로나 해방구'로 만든 셈이다.
우선 모든 정책의 시작점인 방역 수치의 신뢰성이 매우 떨어진다. 2만 명대의 확진자가 나왔던 지난해 6월, 베트남 보건소와 일선 병원들은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인원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의료시설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어디를 가든 긴 대기시간을 감수해야 검사라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확진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현재, 베트남 보건소는 한가하기 그지없다. 올 초 매일 수십만 명의 확진자가 쏟아질 당시 "시설이 포화돼 검사가 불가능하니 자가검사 후 자체격리 및 치료를 진행하라"고 보건당국이 지시를 내린 여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베트남 보건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던 공안의 강력한 감시와 통제가 없어져 자발적인 코로나19 확진 신고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감염 사실을 숨기고 병가를 낸 인원 등을 근거로 추산하면 실제 확진자 수는 통계의 3~5배에 달할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BA.2.75(켄타우로스) 변이에 대한 대응 또한 방역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을 더 키우고 있다. 지난달 25일 한국에 입국한 베트남 교민 2명은 켄타우로스 변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여전히 "베트남 내 켄타우로스 변이 감염자는 한 명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스템으로 체크되는 관광 및 경제산업 관련 수치는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베트남 정부가 자신들의 취약점을 최대한 숨기고 부정적 통계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관광산업과 관련된 베트남의 금기어는 '경쟁국과의 비교'다. 베트남은 동남아 관광 대국들을 따라잡기 위해 최근 5년 동안 국가적으로 관련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상반기, 비슷한 위기 속에서 관광산업을 재개한 태국은 베트남(41만3,358명)보다 5배가량 많은 207만9,950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같은 시기 싱가포르도 150만3,450명으로 베트남을 크게 앞섰다.
경쟁국과의 차이는 베트남 특유의 보수적인 비자 정책에서 기인한다. 베트남은 현재 한국과 일본·프랑스 등 13개국에 한해서만 15일 무비자 관광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미국 등 글로벌 관광의 큰 손인 나라들이 대상에서 빠진 데다, 무비자 여행 대상국도 태국(64개국)·필리핀(157개국)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베트남 역시 관광으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사회주의 체제도 굳건히 지켜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특정 외국인이 자국 정치체제에 개입하거나 도 넘는 비판을 이어갈 경우 비자 발급이나 연장을 안 해주는 방식으로 그들만의 사회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수출입 및 FDI 통계에선 '인과 관계'가 빠져 있다. 성장세인 건 분명하지만 지금의 흐름은 외국기업들의 경영 판단에 의한 일시적 현상에 가깝다. 글로벌 기업들이 지난 2년 동안 미뤄둔 생산 및 투자를 동시에 재개하면서 생긴 효과일 뿐, 온전히 베트남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베트남은 외국기업들의 높은 불만 앞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베트남은 값싸고 풍부한 인력 공급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그러나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최근 남·북부 주요 공단에는 노동자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여기에 행정 지연과 공무원들의 '뒷돈 요구'도 여전하다.
장점은 줄고 단점만 도드라지다 보니 외국기업들은 생산시설 이전까지 고민하고 있다. 북부 지역의 A부품생산업체 법인장은 "미국과 유럽 기업연합이 최근 베트남 정부에 '악화된 경영 여건을 조속히 해결해 달라'며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며 "현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베트남은 '외국기업 이탈'이라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기업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30년의 양국 수교 역사를 통해 구축된 민관 대화 창구가 아직 건실히 기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팜민찐 베트남 총리는 박노완 주베트남 한국대사와 기업 대표들을 불러 한국 측의 긴급한 민원을 청취한 뒤 직접 해결에 나서기도 했다.
찐 총리와의 면담에 참여한 B법인장은 4일 "회동 이후 총리 지시를 받은 하노이시 최고위층이 문제 해결을 위한 만남을 먼저 제시했다"며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 대한 베트남의 진정성만큼은 아직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베트남 정부도 체질 개선에 나서는 모습이다. 사법당국은 올 상반기 총 125건의 부패사건을 수사해 전년 동기대비 두 배에 달하는 259명의 고위 공직자와 경제인을 기소했다.
수사는 방역 과정에서 뒷돈을 챙긴 보건부 장관 등 부처 공무원을 처벌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어 코로나19 기간 진행된 기업인 특별입국 과정에서 뇌물을 챙긴 출입국관리소 고위직들과 수출입 과정에서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돈을 주고받은 세관원 및 기업인들도 줄줄이 잡아들였다. 이번만큼은 베트남 사회 전반에 퍼진 부패와 후진적 행정을 뜯어고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변화를 선택한 베트남이 자화자찬의 수치를 실질적인 성장 동력으로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과거처럼 "이왕 진출해 있었으니" 또는 "오래 친하게 지냈으니 괜찮다"라는 안이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베트남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