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대만은 어떻게 반도체 강국이 됐나
최근 산업 분야의 국제적 이슈는 ‘칩4 동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재인 반도체 생산에 있어 미국은 설계를 맡고, 한국·대만은 제조, 일본은 소재·설비를 담당하며 공급망을 구축하자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를 보고 있으면 대만이 반도체 강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만이 국제 사회에 언급되는 건 중국과의 갈등 이외엔 반도체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대만은 어떻게 반도체 강국이 됐고, 그 핵심에 선 반도체 회사 TSMC는 어떤 길을 걸어온 걸까.
1987년 대만에 설립된 TSMC는 반도체 위탁생산 혹은 ‘파운드리’란 새로운 사업 구조를 제시한 회사다. 생산 시설이 없거나 생산 설비를 추가 확대하는 데 부담을 느낀 반도체 회사들을 대신해 제품을 만드는 외주 생산 방식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것이다. 이런 독특한 사업구조를 가진 회사가 탄생하기까지 대만 정부는 각고의 노력을 했다.
대만 정부는 자국 기업의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책연구기관(ITRI)을 설립했다. 이곳에서 쌓인 지식과 기술을 민간으로 이전해 벤처기업 창업을 유도한 것이다. ITRI를 진두지휘할 수장으로 텍사스 인스투르먼트(TI)에 입사해 25년 경력을 쌓고 부사장까지 지낸 모리스 창을 임명한다.
TI는 반도체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회사다. 원래 초기에는 유전 탐사 회사였으나, 유전 탐사 과정에서 얻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군수 산업에 뛰어들었다. 195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상용화했고, 최초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도 내놨다. 1960년대 들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휴대용 계산기를 만든 것도 TI다. 초기 반도체의 발전을 주도해 온 회사에서 부사장까지 지낸 모리스 창은 “반도체 산업 진흥에 도움을 달라”는 대만 정부의 요청을 수락, 1985년 귀국해 ITRI 기관장에 취임한다.
대만 정부는 대만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선 정보기술(IT) 산업의 높은 기술력 확보가 절실하다고 봤다. 특히 1960년대부터 대만 경제는 미국의 원조가 폐지돼 경제적 자립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를 위해 대만 정부는 다양한 변화를 모색했다. 우선 수출 주도 경제 성장 모델을 선택했다. 외자 유치를 위해 수출 가공지역 내 기업의 모든 제품에 대해 수출을 의무화하는 대신, 해외에서 들여온 원료와 중간재에 대해선 관세와 화물세를 물리지 않았다. 수출 가공지역 내 공장 부지에 대해서도 일체의 세금을 면제해 줬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자, 대만의 우수한 노동력을 활용할 목적으로 미국과 유럽, 일본계 회사가 대만에 대거 진출하게 된다. 당시 대만의 전기·전자부품 산업에선 주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흑백TV를 생산했다.
이와 함께 대만의 많은 기업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세워진 일본 기업을 인수했다. 특히 1970년대 들어 일본 기업이 대거 전기·전자부품 산업에 뛰어들자, 대만 기업도 기업 경쟁력을 위해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다. 이 과정에서 대만은 반도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모리스 창은 반도체시장에서 설계와 생산을 분리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을 남들보다 빨리 파악했다. 당시 TI에선 여러 인재들이 퇴사한 뒤 새로운 반도체 회사를 앞다퉈 창업하던 때였다. 더 많은 TI 소속 연구원이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회사를 창업하고 싶어 했지만, 막대한 생산 설비 투자비용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는 점을 꿰뚫어봤다.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선 생산설비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고, 이 점이 반도체 사업의 신규 창업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임을 파악했던 것이다. 실제 반도체 성능이 점차 향상되면서 이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도 많아졌고, 사양도 높아졌다.
반도체 산업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자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 한국, 대만 등에서도 반도체 회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초기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추기 시작한다. 막대한 시설 투자비용을 충당할 대규모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게 당시 반도체시장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 소재 대규모 회사들의 전쟁터로 바뀌어갔다.
하지만 대만 정부와 모리스 창은 달랐다. 이들은 반도체 산업에서 전통적 사업 구조의 틀을 깨는 방식으로 TSMC를 설립했다. 반도체 산업의 핵심 업무는 크게 반도체 설계와 생산·조립, 테스트로 구분된다. TSMC가 설립되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반도체 업체는 설계와 생산, 테스트까지 모든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생산 설비를 갖추지 않은 기업이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셈이다.
TSMC는 바로 이 틀을 깼다. 생산 시설이 없거나 생산 설비 확장에 부담을 느낀 반도체 회사들의 제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위탁생산 업체로 승부를 걸었다. 반도체에 관심 있는 기업이 막대한 생산 설비 투자 없이도 반도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TSMC의 새로운 사업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는다. TSMC에 위탁생산을 맡길 경우 수많은 위험요인을 덜 수 있어서다. 반도체 공장이나 IT 자산은 시간이 지나면 노후화하고, 신기술 개발로 빠르게 낙후된다. 이뿐만 아니라 반도체 수요는 가변성이 커 수요가 갑작스럽게 늘다가 급감할 수도 있다.
게다가 확보한 장비에 대한 관리비용도 만만치 않다. 위험 요인이 산적한 상황에서 막대한 투자금이 요구되는 반도체 산업에 투자한다는 건 자칫 회사 자체의 존망을 결정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TSMC의 파운드리 사업모델 덕에 반도체 기업들은 위험 부담이 큰 반도체 공장 및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도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생산 설비 투자와 같은 고정비용이 늘어나는 건 그만큼 위험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TSMC 설립 이후 많은 신생 기업은 생산은 TSMC에 위탁해 맡기고 자신들은 기존 반도체 기업의 제품과 차별화한 새로운 반도체 설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각 분야에서 전문 기업의 출현을 가속화했다. 새로운 제품을 설계하면 TSMC가 생산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설계에 재능이 있는 실리콘밸리의 기술자들은 창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처럼 생산 설비 없이 반도체 사업을 하는 회사는 ‘팹리스(Fabless) 회사’라고 불리게 됐다.
TSMC가 제공한 환경 변화 덕분에 다양한 형태의 반도체 제품이 탄생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 반도체 산업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TSMC의 위탁생산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도체 강국이 되기 위한 대만 정부의 노력은 TSMC 설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전후방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만 정부는 신죽과학공업지구도 만들었다. 신죽과학공업지구는 중정국제공항에서 가깝고 주변에 공업 중심 대학인 청화대와 교통대, 전자공업연구소(ERSO) 등의 연구기관도 위치해 있다. 동시에 세제 혜택을 줘 많은 기업도 유치했다. 또한 미국 등 해외에서 학위를 받고 IT산업에 종사하는 하이테크 인재와 미국 내 유학생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실리콘 밸리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적극적인 유치 활동도 전개했다. 그 결과 많은 우수한 인재가 신죽 단지에 모이게 되었다.
TSMC의 사업 모델은 미국의 반도체 제조 시장 점유율을 줄이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만 해도 미국은 전 세계 반도체 제조의 40%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10%대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다. 미국 내 신생 반도체 회사들이 TSMC 덕에 직접 생산설비를 구축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을 갖게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은 반도체 생산 기반을 잃어버린 것이다.
향후에도 반도체 시장은 매년 7% 이상의 고도 성장을 구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방 장비의 대부분이 반도체를 사용하게 되면서 반도체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미국은 반도체를 자국 내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칩4 동맹 역시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한국과 대만에 반도체 생산 도움을 요청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배경엔 TSMC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