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의 대표 노후 상가지역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용적률과 용도지역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비욘드조닝’ 적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용적률 1,500% 이상’을 공언한 용산정비창 부지에 이어 세운지구에도 초고밀 복합단지를 개발하겠다는 구상으로 123층 규모의 롯데월드타워 높이를 뛰어넘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지 주목된다.
세계도시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오 시장은 30일 마리나베이에 위치한 초고밀 복합개발단지 마리나 원을 시찰한 뒤 “'화이트 사이트'의 장점을 용산이라든가 세운지구라든가 이런 곳에 적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다만 오 시장은 '도봉구 운전면허시험장이나 성동구 삼표공장 부지에도 적용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공간적으로 비어 있는 곳뿐 아니라 앞으로 도심 재개발이 이뤄질 곳들은 무수히 많다”고 즉답을 피했다.
화이트 사이트는 개발사업자가 별도 심의 없이 허용된 용적률 안에서 토지 용도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한 싱가포르식 제도다. 하나의 토지에 다양한 기능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어 단일 목적 구획들로 빼곡한 구도심을 고밀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의 ‘비욘드조닝’과 유사한 개념이다. 마리나베이에 위치한 주거·관광·국제업무 복합개발단지인 '마리나 원'도 화이트 사이트 방식 덕분에 용적률 1,300%의 초고밀 복합개발이 이뤄졌다.
오 시장이 싱가포르에서 세운지구 규제 완화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박원순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대대적 손질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운지구 개발 사업은 오 시장과 박원순 전 시장의 정책 방향이 충돌했던 대표적 개발지역이다. 서울시는 오 시장 1기 때인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지만, 박 전 시장 취임 이후인 2014년 철거 계획을 취소하고 ‘도시재생’ 중심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지난해 시정에 복귀한 오 시장은 “세운상가 위에 올라가 종로2가와 청계천을 보면서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오 시장은 마리나 원의 독특한 건축 디자인을 ‘미래도시’에 빗대면서 녹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찾은 마리나 원은 용이 굽이치는 듯한 건물 외벽 사이로 은은한 자연광이 비치고 있었다. 일몰 직전까지도 직사광선이 따갑게 내리쬐는 싱가포르에서 드물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층마다 식재된 350여 종의 식물은 도심 속 녹음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 4월 오 시장은 침체된 구도심을 녹지축으로 조성하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세운지구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비욘드조닝 현실화를 위해서는 국토계획법 개정이나 특례법 재정이 필수라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시는 지난달 구성한 ’구도심 복합개발 태스크포스(TF)’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오 시장은 “도시 재개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국토교통부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며 “중앙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