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취업준비생인 20대 A씨는 자칭 '김민수 검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됐으니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야 한다고 알려왔다. 검찰 출입증과 명함까지 보여주자 A씨는 거짓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전화를 끊으면 처벌받는다는 협박에 다른 곳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420만 원을 인출해 전달했던 A씨는 뒤늦게 사기 사실을 알게 되자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지난 2월 높은 대출 이자로 고민하던 40대 B씨에게 "기존 대출보다 훨씬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휴대폰 너머 제안은 솔깃했다. 금융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라곤 꿈에도 모른 채 B씨는 "기존 대출금을 먼저 상환해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지인에게 돈까지 빌리며 3차례에 걸쳐 1억6,000만 원을 넘겼다. 불과 사흘 새 벌어진 일로 B씨는 이튿날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이 닻을 올렸다. 피해 규모가 매년 급증하고 수법도 고도화됨에 따라 수사·행정 역량을 모아 근절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합수단이 29일 현판식을 열고 공식 출범했다. 서울동부지검에 자리 잡은 합수단은 김호삼 부장검사를 단장으로 범정부 전문인력 50여 명으로 구성됐다. 검사실과 경찰수사팀 6곳이 1대 1로 매칭해 협력 수사하고, 국세청·관세청·금융감독원·방송통신위원회로 구성된 금융수사협력팀이 계좌·통신·재산을 추적한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제도·법령 개선도 추진한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7,744억 원에 달한다. △2017년 2,470억 원 △2018년 4,040억 원 △2019년 6,398억 원 △2020년 7,000억 원으로 해마다 피해금액이 증가했다. 반면 지난해 검거 인원은 2만6,397명으로 전년보다 33.5% 감소했다. 범행 수법이 지능화·조직화·국제화되면서 검거가 어려워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엔 조직폭력배가 개입된 기업형 보이스피싱 조직이 다수 적발되고 있으며, 문서위조·악성프로그램 유포 등 기법도 전문화되고 있다. 중국 해외콜센터를 통해 해외조직과 국내조직이 결합하는 양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합수단 관계자는 "국내 인출책과 대포통장 유통사범뿐 아니라 해외 조직원 처벌까지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합수단은 내년부터 피해신고 창구도 '보이스피싱 통합 신고·대응센터'로 일원화해 신고부터 기소까지 '원스톱'으로 대응한다. 기관별로 쌓아온 범죄 정보를 토대로 피해발생 초기에 현금수거책부터 총책까지 신속히 검거하고 양형기준도 높일 방침이다. 특히 수사관 파견과 형사사법공조로 해외 총책을 송환해 범죄단체를 와해시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날 출범식에 참석한 이원석 검찰총장 직무대리는 "여럿이 힘을 모아야 16년간 해묵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합수단 출범의 의의를 뒀다. 아울러 "보이스피싱은 피해자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가는 악질적 민생침해 범죄"라며 "최말단 인출책, 수거책, 명의 대여자, 중간단계 콜센터 관리자, 배후에 숨은 조직수괴까지 발본색원해 그 이익을 철저히 박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