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베끼고 변형하고…진화는 '모방의 역사'

입력
2022.07.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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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그 일부를 비판하면서 과학이 밝혀낸 신비를 근거로 제시한다. 박테리아처럼 미세한 생명체조차 ‘우연히’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힘든 복잡한 구조를 갖췄다면서 설계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존재하기 어려운 생명체가 아니겠느냐는 식이다. 실제로 과학자들도 초기에는 진화론을 대중에게 설명하면서 애를 먹었다. 모르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육생 동물로 변했다는데 아가미가 폐로 언제 바뀌었을까? 지느러미는? 아니, 애초에 그런 변화를 이끌어낸 동력이 뭔가?

미국 시카고대 생명과학과 석좌교수인 닐 슈빈은 최근 국내에 출간된 저서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답한다. 진화 연구사와 게놈 생물학의 최신 성과를 소개하면서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쉬운 언어로 풀어낸다. 슈빈은 지난 2004년 북극에서 목과 팔꿈치, 손목을 가진 물고기 화석 ‘틱타알릭’을 발견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학자다. 화석과 유전자라는 도구를 양손에 쥐고 40억 년간 벌어진 진화의 양상과 동력을 추적해온 것이다.

진화의 복잡다단한 원리들 가운데서도 슈빈은 ‘모방’에 주목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혁신’처럼 보이는 진화의 과정이 사실은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를 베끼고 변형하는 과정이었다는 주장이다. 날개나 지느러미는 물론이고 인간의 큰 뇌 역시 그런 과정의 결과물이다. 예컨대 ‘NOTCH’ 유전자는 파리에서부터 영장류까지 다양한 생물에 존재하며 여러 기관의 발생에 관여한다. 이와 유사한 ‘NOTCH2NL’ 유전자는 인간 세포에서는 두루 발현되지만 원숭이 조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전자의 유전자가 끊임없이 복사되는 과정에서 변이가 발생해 인간의 큰 뇌 형성에 관여한 후자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슈빈은 진화는 “창조자라기보다는 모방자에 가깝다”면서 “자연이 작곡자였다면 역대 최고의 저작권 위반자로 등극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