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은 이병헌 "'비상선언' 임시완, 예쁜 얼굴로 무서운 분위기 만들어" [HI★인터뷰]

입력
2022.07.28 15:22

배우 이병헌은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배우다. 그가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라는 물음이 생긴 뒤에는 그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단다.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 교훈 등은 이후의 문제다. 이병헌은 자신이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재미를 느꼈는지를 곱씹으며 작품을 선택한다. '비상선언'은 시나리오를 읽는 동안 계속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호기심을 지닌 이병헌과 송강호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의 힘이 합쳐지니 짜릿함이 더욱 커졌다.

이병헌은 28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영화 '비상선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팬데믹 속 극장 향한 걱정

이병헌은 '비상선언'으로 2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다. 이 작품에서 아토피로 고생 중인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견디고 비행기에 오른 승객 재혁 역을 맡았다. '비상선언'을 선보이기 앞서 극장의 운명에 대해 걱정해왔단다. 팬데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병헌은 "'극장이라는 곳이 과연 계속 남아있게 될까'에서부터 '이제 OTT가 주류인 시대가 되는 건가' 등 별별 생각을 다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개봉해 뜨거운 관심을 받은 영화들의 존재는 그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이병헌은 "'극장은 죽지 않았구나' '영화는 계속되는구나'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오랜만에 극장가를 찾을 수 있게 한 작품인 만큼 이병헌에게 '비상선언'이 갖는 의미는 크다. 연출을 맡은 한재림 감독은 예전부터 '언제 한번 작업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이병헌은 "소문은 들었지만 감독님께서 이렇게까지 집요한 줄 몰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쿨할 땐 쿨하지만 때로는 정말 집요하죠. 본인이 원하는 걸 끝까지 찾아내길 원해요. 대신 바라는 걸 찾으면 거기서 끝이에요. 정말 중요한 장면을 한 번에 오케이 하시기도 했어요. 본인 것이 분명하다는 게 좋았습니다."

아빠 이병헌

이병헌의 감정 연기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이병헌은 딸을 지키고 싶어 하는 아빠의 절절한 마음을 모두 표현해냈다. 이민정과 결혼한 그는 실제로 슬하에 아들을 두고 있다. 육아 경험은 그가 '비상선언'의 재혁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기반이 됐다. "아이가 없었다면 아빠들의 모습에 대해 더 공부하고 관찰하고 물어봤을 듯해요. 그런데 전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을 했죠. 아이를 대하는 아빠 입장은 확신을 갖고 연기할 수 있었어요."

슬하에 딸을 둔 아빠와 아들을 둔 아빠의 모습에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병헌은 "난 육체적인, 힘이 많이 드는 육아를 한다. 그런데 딸 가진 아빠들은 말로 조곤조곤 육아를 하더라.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육아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을 대할 때와 딸을 대할 때 아빠들의 눈빛, 터치, 말투가 다른 듯하다. 딸에게 훨씬 더 부드러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송강호·임시완·김남길과의 앙상블

함께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낸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송강호는 베테랑 형사팀장 인호를 연기했다. 비행기에서 주로 촬영했던 이병헌은 송강호에게 "답답하지 않게 돌아다니며 촬영해서 좋았겠다"고 했다. 반대로 송강호는 이병헌에게 "시원한 스튜디오에서만 촬영하니까 편하지?"라고 물었다. 당시를 떠올리던 이병헌은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지 않으냐. 상대 상황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 만들어진 걸 보니 지상에서도, 비행기에서도 다들 엄청 고생한 듯하다"고 말했다.

탑승객 진석 역의 임시완은 이병헌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병헌은 임시완에 대해 "예쁜 얼굴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더라"고 이야기했다. 표정, 눈빛에 놀랐다고도 했다. 부기장 현수를 연기한 김남길은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였단다. 이병헌은 김남길과 관련해 "본인 것을 철저하게 잘 준비해왔다. 촬영장에 와서는 여유 있게 분위기도 살리고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다. 같이 대화하면 기분이 유쾌해지는 친구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병헌에 설렘 안긴 '비상선언'

동료들과 힘을 모아 만든 '비상선언'의 개봉을 앞둔 지금 이병헌은 깊은 설렘을 드러냈다. 과거 관객들을 만나는 게 일상이었지만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루틴이 깨지게 됐다. 그에게 '비상선언'은 '빨리 개봉하길 손꼽아 기다리던 작품'이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무대인사를 하고 관객들을 직접 마주하니까 새로운 감정이 생기더라. '맞아, 이게 내 일이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안에서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는 게 이병헌의 설명이다.

그에게 기쁨을 안긴 '비상선언'은 제74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이다. 작품의 스코어에 더욱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진출해 K-콘텐츠의 매력을 알렸던 이병헌은 세계 무대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요. 비현실으로 느껴지죠. 우리가 주목받고 있을 때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이병헌의 활약이 담긴 '비상선언'은 다음 달 3일 개봉한다.

정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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