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인간이 온다! 귀엽긴 한데, 지구에 좋을까?

입력
2022.07.28 15:00
‘플라스틱 인간’ 
안수민 글, 이지현 그림

편집자주

그림책은 ‘마음 백신’입니다. ‘함께 본다, 그림책’은 여백 속 이야기를 통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음을 보듬어 줄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어린이책 기획자이자 그림책 시민교육 활동가이기도 한 신수진 번역가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최근 출간되는 그림책과 아동 청소년 도서 가운데서 좋은 책을 심사하고 추천하는 일을 몇 군데서 하고 있는데, 신간 목록에서 단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바로 ‘기후 위기’이다. 녹아 가는 얼음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 빨대가 코에 꽂힌 거북, 배 속에 플라스틱이 가득한 채로 죽은 어린 새의 이미지 등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차원은 넘어선 지 오래고,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에게 어떤 파국이 닥쳐올지를 매우 현실적으로 예언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저학년 어린이들에게도 “앞으로 가장 걱정되는 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환경 문제” “지구 온난화”라는 대답이 바로 돌아올 정도로 미래 세대는 기후 위기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다. 어린이들이 가진 이런 불안감을 어른들은 얼마만큼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후 위기를 초래한 책임에서 가장 멀리 있는 존재가 가장 먼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그려낸 ‘마지막 섬’(창비 발행)의 이지현 작가가 안수민 작가의 서늘한 글에 그림을 그린 신간 ‘플라스틱 인간’은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한 섬찟한 예언이자 엄중한 경고로 다가왔다. 산업사회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좋을 플라스틱은 이제는 거의 재앙이 되고 말았다. 감당하지 못할 양의 쓰레기가 된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쪼개져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심지어 숨을 쉴 때마다 우리 몸에 쌓이고 있어서 한 달이면 신용카드 한 장, 10년이면 타이어 한 개를 삼키는 셈이라고 한다. ‘플라스틱 인간’이 우리 몸속에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그림책 ‘플라스틱 인간’은 평범하고 조용한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을 보여주며 이렇게 시작한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어. 조금씩 조금씩 몸집을 키우며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지.”

플라스틱 인간은 허겁지겁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책상에는 시세 차트를 가득 붙이고 바쁘게 일하는 남성 회사원 제임스씨의 몸을 통해 맨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 놀라운 사건을 두고 취재와 연구가 시작되고, 인간의 몸속에 쌓인 미세 플라스틱이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 곧 밝혀진다. 뒤이어 곳곳에서 플라스틱 인간들이 줄줄이 탄생했지만, 사람들은 작고 귀여운 플라스틱 인간을 화젯거리로만 소비하기 바쁘다. 돌보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는 새로운 반려종 정도로 생각하면서, 각자의 플라스틱 인간을 꾸미고 자랑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가면 제임스씨의 플라스틱 인간은 더 이상 사람이 통제 가능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점점 더 많은 플라스틱을 집어삼키고(아무리 먹어도 모자라지 않으니까) 커다란 몸뚱이에서는 고약한 냄새까지 풍긴다. 이제 제임스씨는 플라스틱 인간 때문에 집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집 안은 엉망진창이다. 플라스틱이 사라진 집을 생각해보라. 옷장에는 옷이 없고, 물건들은 죄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배달 음식이 오자 플라스틱 인간은 비닐봉지와 포장 용기를 먹어치우고는 음식을 내던진다. 먹을 것을 빼앗긴 제임스씨는 그제서야 화를 내며 “내 집에서 나가!” 하고 소리친다. 플라스틱 인간은 과연 뭐라고 대꾸했을까. 그리고 제임스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언젠가는 플라스틱 인간이 지구를 뒤덮는 날이 정말 올 것 같다고 내가 한숨을 쉬자 한 어린이가 냉정하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저는 플라스틱 인간이 탄생하는 것보다 지구가 멸망하는 게 먼저일 거 같아요.”


이 책을 어린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주위에 플라스틱 제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세어 보았다. 편의점에 들러 플라스틱 피겨 신제품을 사고 페트병에 담긴 음료수도 사온 어린이가 순간 머쓱해졌다. 아무리 기후 위기가 걱정인 어린이라도, 눈앞에 귀여운 피겨가 있고 시원한 음료수가 있을 때 손에 넣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후 위기를 고발하는 책의 독자가 되라고 하는 동시에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장난감의 구매자가 되라고도 하는 어른들의 모순을 설명하느라 나는 한동안 버벅거렸다.

값싸고 편리한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함이 밀려온다. 그러나 스웨덴의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룀의 말처럼 우리는 “인간 발전을 뒷받침하는 지구 시스템 능력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첫 번째 세대”이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환골탈태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첫 번째 세대”이다. 난생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생태적 위기와 자본주의의 모순 앞에서 눈을 감지 말고 그것이 위기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예민하게 감지하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을 위기의 징후들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신수진 어린이책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