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 행정부의 친 이스라엘 정책이 갖는 편향성을 비판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에 기울어진 ‘세기의 거래’ 협상을 추진했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트럼프 시기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자금 지원이 중단되었고, 워싱턴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사무소가 폐쇄되었다. 이 때문에 지난 7월 중순 이뤄진 바이든의 첫 중동 순방에서 트럼프와 다른 변화된 팔레스타인 정책을 선보일지 궁금했다.
분명 팔레스타인 달래기에 신경 쓴 흔적이 엿보였다. 미국 대통령 전용차 ‘더 비스트’가 동예루살렘 아구스타 빅토리아 병원으로 이동할 때, 차에 매달았던 이스라엘 국기를 내리고 성조기로 교체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끈질긴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측 인사는 아무도 대동하지 않았다. 동예루살렘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팔레스타인 입장을 고려한 조치였다. 미국 의회 내 친 이스라엘 성향의 일부 의원들은 이스라엘의 주권을 침해한 잘못된 처사라며 성토를 쏟아냈다.
이외에도 당근책으로 3억1,600만 달러(약 4,191억 원) 상당의 팔레스타인 원조 패키지를 약속했다. 원조금은 동예루살렘 병원네트워크(EJHN)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에 대한 지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려움이 가중된 식량안보 문제 해결에 사용될 것으로 알려진다. 또 2023년 말까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4세대 이동통신(4G)망을 구축하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요르단강 서안과 요르단을 연결하는 국경통과소를 올해 9월 30일부터 하루 24시간 개방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감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동예루살렘에의 미국 영사관 개설, 워싱턴 PLO 사무소 재설치, 미국의 테러 단체 명단에서 PLO 삭제 등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요청한 사항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별도 주권국가로 존립하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의 희망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이 팔레스타인 친화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손 치더라도 이스라엘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들린다. 일례로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4G 구축, 국경통과소 24시간 개방은 이스라엘 허가가 없으면 불가능한데, 미국이 이스라엘에 온전한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지 우려가 남아 있다.
더군다나 미국과 이스라엘 정상은 예루살렘 회동을 통해 ‘미·이스라엘 전략 파트너십 공동 선언(예루살렘 선언)’을 채택하고, 양국 간 확고한 유대와 이스라엘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헌신을 재확인했다.
특별히 예루살렘 선언에 나타난 히브리어 ‘티쿤 올람(Tikkun Olam)’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올람'은 '세상'을 말하고, '티쿤'은 '고친다'는 뜻으로 '세상을 고친다'는 의미이다. 이 말에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불완전한 세상을 온전하게 만들 소명을 부여했다는 유대교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청교도 신앙에 기반해 건국된 미국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종교적 관점이 투영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가 티쿤 올람의 사명을 감당하는 특별한 동맹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바이든의 감흥 없는 팔레스타인 달래기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