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 72년, 구순 노모의 회상과 꾸중

입력
2022.08.01 00:00
26면
미중갈등, 북핵위협 등 주변정세 요동
친미-친중 이분법과 갈라치기 정치 횡행
과연 합리적 대처 자세 되어 있나

이번 7월 초 백령도는 바람과 안개가 지배했다. 인천항에서 연평, 소청, 대청, 백령에 이르는 4시간의 뱃길은 해전과 피격의 기억들을 소환했다. 두무진부터 갔다. 10억 년 전 규암이 무장들의 투구처럼 펼쳐진 절경이다. 다음날 끝섬 전망대에도 해무가 짙었다. 그러다가 짧은 순간 안개가 걷혔다. 우리 초계함이 흰색의 항적을 바다 위에 선명하게 그려냈고, 그 위편으로 희미하게 땅의 윤곽이 드러났다. 안내판은 북한 장산곶 일대임을 가리켰다.

평안남도 남포가 고향인 모친은 1950년 12월 5일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가까스로 미군 LST함정에 올라 피란을 시작한 날이었다. 머리에 이었던 밀가루 봉지가 터지는 바람에 어머니는 흰 가루를 뒤집어쓴 채 배를 탔단다. 아비규환이었던 남포 항구를 떠난 그 배도 백령도 옆을 지나갔을 것이다. 애초 인천으로 향했으나 정박하지 못하고 부산으로 뱃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중국의 대규모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되고 있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7월 27일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탈환했고, 개전 1년 만에 한반도 허리에서 전선이 교착되었다. 미국과 중국을 소모전에 빠뜨리고 유럽에서 영향권을 강화하려던 스탈린은 휴전을 용인하지 않았다. 한반도의 포성은 그가 죽고 나서야 멈추었다. 이후 70년 세월이 흐르면서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했지만, 지속된 분단은 우리 사회의 성숙과 국제적 역할을 크게 제약했다.

2004년 북한 당국자는 남포의 대동강 갑문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고향을 스쳐온 이야기를 해 드렸을 때 마음이 들뜨셨다. 나는 당시 경기도 정무부지사로서 남북 농업협력사업차 방북했다. 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경기 볍씨와 과학농법으로 쌀을 증산하는 프로젝트였다. 다음해, 평양 아래 강남군 당곡리 일대 3만 평 시범 사업에서 1.9배의 쌀이 추수되었다. 그런데 100만 평으로 확대하기로 했던 합의에 급제동이 걸렸다. 2006년 10월 북한 정권은 1차 핵실험을 했고, 계속된 도발은 판을 바꾸었다. 어머니는 탄식했다.

이제는 전면화된 미중의 전략 경쟁이 대외 환경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는 절대적 위기와 전환적 기회가 공존하는 첨예한 경계가 되었다. 친미-친중의 이분법과 갈라치기 정치는 위태로움만 키울 뿐이다. 세계적 과제에 대한 전략적 안목과 우리 내부 및 한반도의 통합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생존마저 위협받는 상황이다.

최근 북한의 안보 우려까지 감안하겠다는 통일부 장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보도되었다. 비핵화는 쌍방이 취할 행동들을 시계열로 엮는 문제이다. 실패했던 MB의 ‘비핵 개방 3000’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한미 당국자들이 ‘북한 7차 핵실험 준비 완료’를 언급하는 상황인데도, 중국 및 우크라이나가 우선 과제인 미국은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한미 간 동맹의 신뢰를 더욱 두텁게 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및 동북아 안정을 위한 실효적 접근법을 미국과 깊이 논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원칙을 세우고,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높여야 한다. 한편 중국의 고압적 자세에 우리가 휘둘려서는 안되지만, 당국자들의 쓸데없는 자극성 발언도 적절치 않다. 미국 중간 선거와 중국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마무리되는 11월에는 국면이 또 달라질 것이다.

“7년도 아니고 70년이 넘었다. 너도 정치했지만 그동안 뭐 했니. 나라 바깥일은 집안싸움하면 안 돼.” 분단 77년, 피란 72년, 정전 69년에 아흔 살 어머니의 꾸중은 엄했다.



김성식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