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눈 깜짝할 사이 끝나듯 내 친구 빙하도 죽음의 문턱에"

입력
2022.07.29 04:30
14면
세계적 빙하학자 제마 워덤 신간 '빙하여 안녕'
빙하 향한 사랑 고백이자 인류에 띄우는 메시지
"인류, 빙하 운명 결정하는 갈림길에'"

어제는 북극 그린란드가, 오늘은 스위스 알프스가 뉴스의 주인공이다. 세계 도처에서 빠른 속도로 빙하가 녹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빙하 해빙 속도가 역대 최고치라는 소식에도 기후 재난 대응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빙하 손실이 기후 변화의 시한폭탄이라 믿는 빙하학자들로서는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혹여 빙하 연구 최전선에서 느낀 자연의 위대한 힘과 험난한 탐험 여정의 경험을 널리 알린다면 빙하에 대한 대중의 감정적 거리감이 줄어들지 않을까.

신간 '빙하여 안녕'은 이 같은 발상에서 시작됐다. 30년 가까이 세계 각지의 빙하를 탐사한 영국 빙하학자 제마 워덤(47)은 "심각한 건강의 위기를 겪고 있는" 빙하의 현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워덤이 뇌종양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2018년 말의 일이다. 그는 "나의 오랜 친구 빙하는 내가 겪은 것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고 적었다.

책은 건조한 사실과 수치만 나열하는 대신 극한의 야생을 여행하며 보낸 저자의 체험과 소회를 통해 빙하 용해의 심각성을 풀어낸다. 지리학과 학부생 시절 찾은 스위스 아롤라 빙하부터 시작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 그린란드, 남극 대륙, 칠레 파타고니아, 인도 히말라야, 페루 코르디예라 블랑카(하얀 산맥) 등에서 이뤄진 연구 여정이 담겼다.

저자에게 빙하는 그저 움직이는 얼음덩어리가 아니다. 과학자로서 저자는 빙하가 어떻게 움직이고 녹으며 주변 지형과 기후가 빙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이를 통해 빙하가 인간사와 생태계 역사에서 갖는 중요성을 역설한다. 빙하는 인근 생태계에 영양을 제공하기에 빙하 손실은 인간에게 직접적 피해를 준다. 물 부족으로 빙하 주변 농업이 퇴화하면 이를 둘러싼 정치 갈등도 격화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지구는 200년 뒤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저자는 빙하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여성 연구자로서 탐사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어려움도 소개한다. 그는 어머니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인 시기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남극 대륙으로 떠났다. 유일한 여성 연구원인 경우가 많았던 초창기 탐사 땐 소변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아무것도 마시지 않은 채 열두 시간 동안 소변을 보지 않기도 했다. 파타고니아 탐험 여정을 다룬 장(章)에는 커피 여과지 대신 얇은 양말 한 짝으로 커피를 내려 마신 일화가 담겼다.

빙하를 향한 일종의 러브 스토리인 책을 통해 저자는 인간과 빙하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하며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한다. 저자는 "2018년 큰일을 겪은 뒤 내 삶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우리의 빙하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호소했다.


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