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현재 인류는 우주의 어디까지 진출했을까? 인류가 지구 외에 직접 발을 디딘 곳은 달이 유일하다. 무인 착륙선을 보내 표면 탐사를 한 곳은 금성, 화성, 토성의 위성 타이탄, 그리고 일부 소행성이다. 가장 멀리 진출한 태양계 탐사선은 1977년 쏘아 올린 보이저 1호로 현재 지구-태양 거리의 약 156배 떨어진 곳을 날고 있다. 우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넓어 무언가를 보내 직접 탐사를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은 당분간 태양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간접 탐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주 공간이 온갖 항성과 은하들이 내뿜는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빛을 낚아채 분석할 수 있다면 직접 갈 수 없는 별과 은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특히 빛은 1초에 약 30만㎞라는 속도로 날아가니 우리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더 먼 과거의 빛을 보는 셈이다. 지난 7월 11일 미국 백악관이 최초로 공개한 제임스웹 망원경의 사진 속에는 무려 131억 년 전 은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인류는 현재 우주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제임스웹 망원경의 초기 데이터 중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약 1,150 광년 거리 외계행성의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였다. 우리 태양과 비슷한 항성 주위를 가까이 도는 거대 기체 행성의 대기 성분에 물이 존재한다는 뚜렷한 증거를 제임스웹 망원경이 찾아낸 것이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빛의 속도로도 1,150년이나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행성의 대기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었을까? 직접 가서 대기를 채취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 경우에도 힌트는 빛에 숨어 있다.
목성보다 조금 크지만 자신의 모성(항성)을 매우 가까운 궤도로 도는 이 외계행성이 모성 앞을 지날 때는 모성의 별빛을 1.5% 정도 줄인다. 이때 별빛 일부가 외계행성의 대기를 통과한 후 1,150년을 내달려 제임스웹 망원경에 포착됐다. 중요한 것은 외계행성 대기 속 성분에 따라 빛의 일부가 선택적으로 흡수된다는 것이다. 20세기 과학의 최대 성과라 할 양자역학에 의하면 모든 원자나 분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에너지 구조를 갖고 있어 특정 색깔의 빛만 흡수하거나 방출할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에 다양한 전자기파를 쪼여준 후 흡수되는 색깔이나 파장만 알면 어떤 원자나 분자가 대기를 구성하는지 알 수 있다. 이런 흡수 분광법은 오늘날 물질의 성분 분석법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산소 하나와 수소 두 개로 구성된 물분자는 에너지만 받으면 자신의 구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진동하며 본인만의 고유한 춤을 춘다. 물분자를 춤추게 할 수 있는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다. 외계행성의 대기 속 물분자 역시 모성에서 방출된 적외선 중 일부를 흡수해 자신만의 춤을 추며 제임스웹 망원경에 기록된 적외선 스펙트럼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은 다른 어떤 분자도 흉내낼 수 없기에 과학자들은 이 행성에 직접 갈 필요도 없이 대기 속 수증기의 존재를 자신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여러 종류의 망원경을 결합해 외계행성의 대기 분석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제임스웹 망원경에 대한 과학자들의 기대가 큰 이유는 이 망원경이 대기 속 분자들의 특별한 진동이 흔적을 남기는 적외선 대역을 매우 높은 감도로 광범위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적외선 스펙트럼 역시 하나의 망원경이 가장 넓은 파장 대역을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측정한 최초의 사례다. 외계행성의 대기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축적된다면 인류는 행성의 형성과정이나 인류의 거주가 가능한 행성의 조건 등에 대해 더 풍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