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과 친부모 상봉이라는 인생 클라이맥스 현장에 초대받아 영광입니다.”
5년째 해외입양인들을 돕고 있는 김유경(51) 배냇(Banet) 대표의 말에서 겸손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평범한 주부들이 영어 공부를 위해 모인 동호회는 이제 15명의 회원을 갖춘 어엿한 ‘해외입양인 뿌리찾기 모임’으로 성장했다. 단체 이름도 갓난아기 때 해외로 보내진 입양아들이 입었던 옷 ‘배냇저고리’에서 따온 것이다.
김 대표의 개인적 인연은 모임 성격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그가 4년간 미국에서 생활할 때 친구로 지내던 한국계 입양인 쥴리가 2018년 보낸 메일 한 통이 시작이었다. 쥴리는 친생모를 찾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김 대표는 친구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입양 당시 여권사진과 한국 이름, 출국날짜만 갖고 대구시청과 보육원, 대구희망원을 샅샅이 뒤졌다. 3개월 노력 끝에 쥴리의 한국 이름과, 친어머니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입양 흔적을 더듬던 쥴리는 “다른 해외입양인들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김 대표는 “쥴리의 가족을 찾아 헤맨 3개월은 수액을 맞아야 할 만큼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 사람의 인생 일부를 되찾아주는 과정에서 보람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의지에 주변 이웃과 친구들의 도움이 더해져 해외입양인들의 뿌리를 본격적으로 찾아 나섰다.
배냇의 활동은 단순히 친부모 찾기에 그치지 않는다. 입양인과 부모 상봉을 이어주는 윤활유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 김 대표가 동석했던 입양인 키르스틴의 친부모 상봉도 그중 하나다. 키르스틴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40년 만에 만남을 청한 딸을 거부했다. “한 달간 설득해 상봉 자리에 나온 아버지가 헛기침만 하다 결국 용서를 구했습니다. 모두 눈물바다가 됐지요.” 아버지가 종이에 써온 딸 이름은 ‘몽란’이었다. 자식을 다시 만나 꿈만 같고,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사실 수십 년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마음속 응어리를 푸는 과정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처지를 솔직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자식을 왜 버렸는지, 모든 질문에 숨김없이 답해야만 상처를 회복하고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습니다.”
입양인들이 순수 민간단체 배냇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공공기관의 역할 부재’를 꼽았다. 현재 아동권리보장원이 ‘해외입양인 부모찾기’를 담당하는 대표 정부기관이지만, 해외입양인 22만여 명을 응대하는 인력은 5명에 불과하다. 김 대표는 “심리상담가 등 상봉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보조할 전문인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그간 해외입양인을 방치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한 정부의 공식 사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냇의 목표는 소박하다. 입양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1970~1980년대생 해외입양인들의 친부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가족을 찾아주는 것이다. “입양인들은 스스로 ‘뿌리 없이 흔들리는 나무’라고 말해요. 멋진 나무처럼 보이지만 땅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들이 단단한 인간으로 자리잡도록 힘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