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는 '선진국 쫓아', 증세는 '시기상조'... 기재부의 이중 잣대

입력
2022.07.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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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상속세 개편 근거로 제시한 국제 표준
주요국보다 낮은 부가세엔 미적용
"미래 위해 필요, 감세 기조로 개편 미뤄져"

기획재정부가 법인세 감세를 추진하는 핵심 배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과도한 세 부담 완화'다. 주요 선진국과 세제를 맞추겠다는 이 논리는 정작 한국에서 덜 걷히는 부가가치세 등엔 적용되지 않았다. '국제 표준대로'라는 세제 개편의 대원칙이 '이현령비현령'식으로 흔들린 셈이다.

주요국보다 부담 큰 법인·재산과세 감세

27일 기재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3.4%로 OECD 평균 2.7%보다 높다. 법인세는 4단계 누진세율(10·20·22·25%) 체계로 기업 이익이 많을수록 세금도 더 낸다. 반면 OECD 회원국 38개국 중 35개국은 단일세율 또는 2단계 세율로 법인세를 운영하고 있다.

재계는 국제 사회와 비교해 법인세를 더 부과하는 구조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해왔다. 기재부가 법인세 체계를 대기업 기준 2단계(중소·중견 3단계)로 단순화하고 최고세율은 22%로 낮춘 이유다.

기재부는 다주택자에게 더 무거운 세금을 매긴 문재인 정부 시절 다른 국가보다 보유세 부담이 가파르게 증가한 면을 고려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완화했다. 상속세를 걷는 방식인 유산세 역시 내년에 OECD 대세인 유산취득세로 바꿀 것이라고 예고했다. 상속세를 OECD 회원국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취지다. GDP 대비 상속세·종부세·거래세 등 재산과세 비중은 4.0%로 OECD 평균 1.9%를 두 배 이상 웃돈다.

국제 표준을 따르는 건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원칙을 아직 주요국만큼 걷지 못하는 부가세 등엔 적용하지 않은 점이다.

한국서 덜 걷는 부가세는 그대로

1977년 도입 이후 46년째 10%로 묶인 부가세율은 OECD 평균 19.3%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부가세에 개별소비세를 더한 소비과세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8%로 OECD 평균 10.6%에 한참 못 미친다.

소득세 역시 GDP 대비 세수 비중이 OECD 평균 8.3%에 뒤처진 5.3%다. 기재부가 선택한 개편은 주요국을 따라가는 세 부담 확대가 아닌 과세표준 상향을 통한 감세였다. 하지만 소득세 개편은 세금 절감액이 연봉 3,000만 원 기준 월 1만 원도 안돼 감세 효과가 약할 뿐 아니라 국제 표준에서 더 멀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부가세, 소득세 개편은 어려운 과제지만 미래 세입 확충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국제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세 부담을 높여야 하는데 현 정부의 감세 기조로 개편 착수 시점은 더 늦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재부도 할 말은 있다. 부가세율을 올해 올리기엔 부담이 컸다. 거의 모든 품목에 붙는 부가세율을 인상하면 고물가를 더 부추길 수 있어서다. 부가세, 소득세 과세 대상은 사실상 전 국민이라 증세가 쉽지 않은 부분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기재부도 중장기적으로 부가세, 소득세 등을 국제 표준에 맞춰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앞으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사회·복지 지출 증가를 고려해 장기적으로 세원을 어떻게 더 확보할지는 오래된 고민"이라고 말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