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만난 윤은호(37)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우리 곁의 우영우'와 같은 주제를 예상하고 만났으나, 정작 장애 당사자들은 드라마를 보고 우려 등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비장애인으로서 무지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실제로 스펙만 보면 '우영우'와 윤 교수는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수석 졸업하고 국내 최대 로펌에 들어갔다. 윤 교수도 만 두 살 때 자폐 진단을 받고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공부한 끝에 국내 최초로 자폐인으로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하대 초빙교수로 2019년 임용됐다. 얼핏 보면 '인간 승리', '장애 극복' 서사 면에서 두 사람은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윤 교수는 "장애인이라는 정체성 하나로 모든 복합적인 특성을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며 "각기 다른 장애인들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윤 교수가 자폐인으로서 국내 최초로 대학 강의를 맡게 된 지 약 3년이 지났다. 물론 다양성과 포용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어려움이 없진 않았다. 아버지 월급의 절반을 본인의 교육비로 써야 했고, 중학교 때는 전학을 한 번 가야 했을 정도로 학교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서울대에 지원하려고 했으나, '자폐성 장애'라는 이유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학사를 졸업한 인하대의 경우 정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윤 교수는 "우영우는 서울대를 장애인 전형으로 갔을지, 일반전형으로 갔을지 궁금하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석박사 논문 과정은 오히려 윤 교수에게는 '쉽고 재미있는' 분야였다. 윤 교수는 "심사 과정은 비장애인과 소통해야 하니 조금 쉽진 않았지만, 혼자서 논문을 찾아 공부하고 쓰는 게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학창시절의 스트레스는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여 해소하려고 했다. 10대 때는 '코스프레'에 빠졌다. 이 같은 활동을 바탕으로 2019년에는 '코스프레'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책을 내기도 했다. 철도도 윤 교수의 취미 중 하나다. 실제로 철도신문에서 약 1년간 기자로서 일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윤 교수의 삶에서 장애는 그저 그를 구성하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일상과 목표, 당장의 고민 등은 비장애인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초빙교수다 보니까, '나중에 재임용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크죠. 또 학생들과 소통하는 강의를 하고 싶은데, 정작 제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대답을 안 합니다. 하하"
혹시 연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여자사람친구들은 있는데 얘기해 보면 내가 여성분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가기는 조금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있다"고 털어놨다.
윤 교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당사자로서 자폐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는 성인자폐 당사자 자조모임 '에스타스'의 공동조정자로 활동하고 있다. 윤 교수는 10여 년 전 '자폐증'이란 용어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통합된 것에 대해 "사실 당사자들은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자폐는 저인지부터 고인지까지 다양한데 여러 특성을 하나로 묶어버린다"고 지적했다.
그의 큰 바람은 자폐인도 학술 연구를 수월하게 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조성되는 것이다. 그는 "해외에서는 자폐인도 연구자가 되고 학술지를 내는데 우리는 전무하다"며 "자폐인이 고등교육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인 그는 40대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두 개 있다고 했다. "하나는 항공운전 면허 취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철도운전 면허 취득이에요. 자폐인 중 철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은데, 아직 철도기관사는 안 나왔죠. 제가 그 편견을 깨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