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농협 임원 선거 과정에서 돈을 주고받다가 적발돼 수사나 재판을 받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대의원 수십 명이 이사 6~8명을 뽑는 간접선거 방식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유권자 매수가 쉬워 금품수수 등 불법 선거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구 성서경찰서는 26일 농협 비상임이사에 당선되기 위해 대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알선한 16명과 이들에게 금품을 받은 대의원 52명 등 총 68명을 농업협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 중 알선책으로 활동한 A와 B씨는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월 대구 모 농협에서 비상임이사 8명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출마자 15명 가운데 13명이 200만~1,39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대의원들에게 제공했다. 대의원들은 55명 중 52명이 20만~48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 68명이 주고받은 금품은 총 7,950만 원에 달했다.
구속된 A씨는 직접 금품을 제공하거나 후보들에게 “사적 모임에 농협 대의원 다수가 회원으로 활동한다”고 과시하며 금품을 받아 대의원들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도 금품 거래를 알선했다가 적발됐지만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4월 18일 경북 영천의 한 축산농협에서 임원 선거 때 돈을 주고받은 혐의로 후보자와 대의원 등 12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올 1월 비상임이사 6명을 뽑는 선거에서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청탁 금액은 모두 수천만 원으로 확인됐다.
제주에선 지난 2월 농협 임원 선거 때 대의원에게 금품을 건넨 비상임이사가 1심 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B씨와 C씨에게는 각각 벌금 500만 원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해당 농협은 2017년 임원 선거에도 후보자 5명이 금품을 살포한 혐의로 입건됐다. 금품수수 혐의로 68명이 입건된 대구의 농협 역시 2014년 이사 선거 때 일부 후보가 대의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는 신고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농협 비상임이사는 보수가 없는 명예직이지만, 이사회에서 각종 의결권을 행사하고 간부 직원의 임명과 해임, 조합원 자격 심사, 자산 취득과 처분에 조합장 성과금도 결정한다. 회의 참석 수당(20만 원)을 받고 해외 연수 등의 혜택을 누린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에도 선출 방식은 대의원과 조합장만 투표하고, 각자가 이사 수만큼 표를 행사해 과반수를 얻은 득표자를 선정하는 간접선거다. 이사는 농협마다 6~8명씩 뽑지만, 유권자인 대의원은 수십 명에 불과해 선거 전부터 금품 살포 등 불법 선거운동이 판을 치는 데다, 기소돼도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 직무가 유지된다. 이 때문에 농협 내부에서도 농협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지역 농협 임원은 “비상임이사라 급여는 없지만 권한이 막강해 친인척 채용이나 이권 개입, 자산 처분 등 마음만 먹으면 여러 방법으로 사익을 취할 수 있다”며 “농협법을 보완해 금권 선거의 병폐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