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 이후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확진 뒤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는 직장인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누적 치명률이 0.13%로 낮아진 데다가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까지 약해지면서 '코로나19는 감기나 다름없는데 굳이 쉴 필요가 있냐'는 그릇된 인식이 퍼진 탓이다. 코로나19에 감염돼 휴가를 받은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하거나, '눈치껏' 일하는 확진자들까지 생기고 있다.
위의 세 사례 외에도 '코로나19에 걸리고도 일할 것을 요구받는다'는 직장인이 상당수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 6월 1,000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응답자 중 '업무 관련 요구를 받은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은 54.1%나 됐다. 8.5%는 '상당 수준의 업무량을 요구받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아프면 쉴 권리'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코로나19 양성 반응 이후 '직장에 출근해 일한 적 있다'고 답한 이들이 4.8%, '집에서 일했다'는 이들이 29.5%에 달했다. 업무를 계속한 이유는 '멈출 수 없는 일인데 대신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56.2%, 중복응답),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29.8%), '일을 멈추면 복귀 후 업무 부담이 너무 늘어나서'(21.5%) 순으로 많았다.
아프든 아프지 않든 휴가 중에 일을 시키고, 지시에 따르지 않을 시 불이익을 줬다면 명백한 위법이자 갑질이다. 문제는 A씨 사례처럼 직장 상사와 업무와 관련한 연락을 주고받는 행위를 어떻게 볼지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업무시간 외에는 일과 관련한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 즉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공론화됐고, 2016년에는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도 발의됐지만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현행법은 '퇴근 후 업무 연락'을 근로시간으로 볼지 휴게시간으로 볼지 불분명하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노동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본다. 전화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취하면 대기시간인지 휴게시간인지 불분명하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21대 국회에서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보통신기기 등으로 업무 지시를 하는 경우'를 대기시간으로 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년 넘게 상임위원회에 계류 상태다.
이런 법의 사각지대에도 불구하고 A씨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한다. A씨와 팀장 사이에 직장 내 우위관계가 존재하고, 업무 연락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줬다는 점에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 내 고충처리 기구를 통해 신고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회사는 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무장소를 바꾸거나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되면 가해자에게는 즉시 징계 등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고자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부당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물론 모든 업무 연락이 직장 내 괴롭힘이 되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상사의 연락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는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고용노동부가 2019년 마련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특정 행위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인정되려면 ①사회 통념에 비춰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②업무상 필요하더라도 그 행위가 사회 통념에 상당하지 않다(부합하지 않다)고 인정될 때다.
업무상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 담당자에게 간단히 질문을 하는 정도라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로 자주 연락해 코로나19 환자를 힘들게 한다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 권남표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코로나19로 아파서 연차(유급휴가)를 썼는데도 업무 지시를 했다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노동자가 거부 의사를 전했는데도 사용자나 상급자가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고 암시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판단은 더 쉬워진다. 여수진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노동자가 거부하고 연락을 받지 않는데도, 불이익을 암시하며 강요한다면 그때부터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연락을 받지 못한다는 자동 응답 메시지라도 남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B와 C씨 사례처럼 자발적으로 일을 한 경우라면, 보상을 받거나 권리를 구제받기는 어렵다. 다만 B씨처럼 출장으로 코로나19에 확진된 경우라면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보상받을 수 있다. 권남표 노무사는 "출장을 가서 걸렸다면 산재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9월에도 국내 기업 해외 지사에서 일하다 입국한 뒤 공항 검역 과정에서 양성이 나온 직장인이 산재 판정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아파도 출근'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점에 경각심을 가지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수진 노무사는 "기존엔 비정규직에서 주로 나타났던 아파도 출근하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노동자가 아파도 출근한다는 의미의 직업환경의학 용어)이 코로나19를 거치며 재택근무를 하는 정규직에서도 많아졌다"며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남표 노무사는 "코로나19 생활지원금이 축소되면서 아파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파도 생활비 걱정 없이 쉴 수 있도록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빨리 전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