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그렇더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 상사. 확진자 동선 공개로 아웃팅(성적 취향을 타인에 의해 폭로당하는 일)을 걱정하는 동성애자.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이태원 술집 자영업자. 오늘 들은 라디오 사연 같지만 신간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 속 인물들의 삶이다.
올해 부커상 후보 지명으로 주목받았던 작가 박상영(34) 소설의 강점은 이런 현재성이다.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를 통해 2016년 등단 당시 들은 '요즘을 압축하는 힘이 좋다'(윤고은 소설가)는 평을 거듭 증명했고, 이번 신작에서는 한 뼘 더 성장한 압축력을 보여줬다. 동시대를 사는 30대의 고군분투와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을 쫀쫀하게 그렸다. 그중에서도 팬데믹 시기 차별받는 소수자의 고통에 더 집중했고, 우리를 스쳐간 지난 2년여간 일상의 편린 하나하나를 문장에 촘촘히 새겼다.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만난 박상영 작가는 "2019년 단편 '요즘 애들'을 쓴 후 코로나19 시국을 겪으면서 소설 속 인물들이 자꾸 (저에게) 얘기를 걸더라"고 말했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과정에서 고립감을 느낀 경험"이 작가를 움직였다. '게이' 김남준과 '일하는 여자' 황은채 등 소수자가 겪는 팬데믹을 이 사태가 지나가기 전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머지 3편의 단편을 빠르게 써 연작소설로 엮었다.
기민하게 시대를 읽는 '요즘을 압축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박 작가는 대뜸 "저는 되게 '시끄러운 레이더'와 같다"고 답했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서 엄마가 제 질문에 대답해 주느라 피곤했다고 하세요.(웃음)" 남 얘기를 듣기 좋아하는 성향이 소설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믿음에 대하여'는 박상영에게 새로운 마디와 같다. 사랑과 퀴어, 세상과 불화하는 인물을 또 다뤘지만 새 시도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초점을 인물의 내면에서 바깥으로 확장했다. 코로나19와 부동산, 종교 등 사회 문제를 직격했다. 가령 개인의 감정에 집중해 퀴어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을 구성하고 사회 안에서 인정받으려는 과정에서 겪는 차별, 배척도 조명했다.
한 공간의 인물들이 각기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작소설 형식에도 첫 도전했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영향을 받았다. 이런 특징을 강조하려고 각 작품이 시작되는 페이지에 제목과 함께 그 작품의 주인공 이름도 적었다. 단행본 출간 소설 중에선 처음으로 3인칭 시점 작품('우리가 되는 순간')도 썼다. 그는 "인물에 착 붙어서 그 내면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렌즈를 좀 멀리 가져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소수자 연대·불화는 여전히 그에게 주요한 화두다. 친구인 듯하면서도 갈등을 겪는 동갑내기 이성애자 여성과 동성애자 남성의 관계가 '1차원이 되고 싶어'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등장한다. 그는 "소수자끼리 서로 보듬어 주기 힘든 현실 탓에 누군가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화해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등단 이후 퀴어 소설 대표 작가로 불린 그는 "두렵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글을 쓰면서 오만한 판단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노인, 가족결정권, 여성 등 다양한 소수자 의제가 등장하는 이번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특히 더 괴로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함부로 타인을 판단하지 말자는 게 작가로서의 유일한 철학"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올해 초 부커상 후보 지명 소식은 그런 그에게 힘이 됐다. 퀴어 소설이란 이유로 칭송받지도, 반대로 폄하되지도 않는 해외에서 한 작품으로서 인정받았다는 게 큰 행복이었다. 그는 "(퀴어라는) 소재 팔이한다, 억지로 밀어줬다 등의 얘기나 악플을 저도 내심 반쯤 믿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면서 "(후보 지명만으로도)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해외 일정도 많아졌다. 내년에는 네덜란드, 벨기에, 호주 등에서 독자를 직접 만날 예정이다. 글쓰기와 외부 활동의 원활한 병행을 위해 최근 작가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도 계약했다. "작가로서 포부가 커요. 더 다양한 업계와 넓은 세계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래서 좋은 동료를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