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이 임금을 밀어올리고, 임금이 재차 물가를 자극하는 이른바 '임금·물가 상승 소용돌이(wage·price spiral)' 가능성이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물가와 임금 사이에 발생하는 이런 악순환은 고물가를 고착화할 수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물가·임금 관계 점검'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물가 상승세가 가파른 '고(高)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물가와 임금 간 상호작용은 강하게 나타났다. 한은이 최근 20년간의 자료를 분석해 봤더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포인트 오르면 임금 상승률은 1년(4분기)의 시차를 두고 0.3~0.4%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임금 상승(1%포인트) 역시 4~6분기 이후 인건비 비중이 높은 개인 서비스를 중심으로 물가(0.2%포인트 상승)에 반영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2000년대보다 물가 및 임금 상승률이 높았던 1990년대로 분석 대상을 확대했더니, 임금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두드러졌다. 한은에 따르면 1990년대 평균 물가(5.1%) 및 임금 상승률(11%)은 최근 20년간(2003~2021년) 평균 물가(2.2%) 및 임금 상승률(4.8%)의 두 배가 넘는다. 한은은 "지금처럼 물가 오름세가 높고 기대인플레이션도 상승하는 시기에 기업들이 (인건비 등) 원가 상승 요인을 가격에 전가하는 정도가 커지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물가와 임금의 연쇄 상승은 경제를 고물가 수렁으로 빠트릴 수 있어 선제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물가가 계속 오르리란 기대심리(기대인플레이션)까지 상승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를 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13일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단행을 두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고 물가와 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해져 고물가가 고착화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선제 조치"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를 쓴 김정성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차장은 "최근처럼 물가 오름세가 높아진 상황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지면 물가와 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화돼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