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사용 금지' 등 엄격한 플라스틱 관리 정책을 시행 중인 필리핀의 시키호르섬이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성공의 비결은 "깨끗한 자연경관 속에서 친환경 관광이 가능하다"는 입소문.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휴식을 즐기려는 서양 관광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시키호르섬의 성공을 지켜본, 동남아시아 다른 국가들도 과감한 정책 변화를 선택했다. 관광 산업이 핵심 외화 벌이 수단인 만큼 '친환경 여행'이라는 아이템을 통해 침체된 산업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것이다.
필리핀 중부 센트럴 비사야스 지방에 위치한 시키호르는 필리핀에서 세 번째로 작은 섬이다. 소수의 여행 마니아들 사이에서 주술사들이 사는 '마녀의 섬'으로 알려진 정도였고 세부, 보홀에 비해 인지도가 밀렸다.
2018년 시키호르섬 정부가 '비닐봉지 사용 전면 금지와 플라스틱 물품 전면 재활용 조례'를 발표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예산 부족으로 친환경 정책을 펼치지 못하던 섬 정부가 한 비정부기구(NGO)에서 자금 지원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키호르섬 정부의 친환경 의지는 강력했다. 조례 발표 즉시 음식 포장에 비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플라스틱 분리 배출을 하지 않으면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았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지저분했던 캄부가하이 폭포와 살라둥 해변이 영롱한 청록과 에메랄드 빛을 되찾았다. 1년도 안 돼서였다.
시키호르섬의 노력이 알려지자 외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24일 필리핀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친환경 조례 발표 이후 시키호르섬의 관광객 연간 증가율은 평균 48%에 달한다.
필리핀 통계청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제선 운항이 중단됐던 시기를 제외하면, 시키호르섬의 성장률은 필리핀의 모든 관광지 중 가장 높다"며 "특히 올해 4월 이후 관광객 유입 속도는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가파르다"고 말했다.
시키호르섬의 질주는 동남아 국가들을 각성시켰다. "친환경 정책을 시행하려 해도 예산이 없다"고 변명으로 일관하던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친환경 달성 목표를 설정하고 체질 개선에 나섰다.
가장 적극적인 건 베트남이다. 베트남 천연자원부는 지난 4월 수도 하노이를 친환경 시범지역으로 설정, 마트, 쇼핑몰, 식당의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2025년까지 전국의 비닐봉지 소비를 모두 금지하는 게 최종 목표다. 동남아는 음식 포장과 배달에 비닐봉지를 아낌없이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네시아와 태국도 친환경 흐름에 동참했다. 인도네시아는 2025년까지 비닐봉지 사용률을 75% 줄이고, 2040년엔 '플라스틱 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는 지난 5월 자바섬 등 3개 지역을 시범 지역으로 선정, 본격적인 친환경 정책 시행에 나섰다. 태국의 친환경 도달 목표 시점은 2030년이다. 태국 정부는 지난달부터 비닐봉지와 일회용 플라스틱 컵, 빨대의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국제사회도 호응하고 있다. 악셀 반 트로츠버그 세계은행(WB) 이사는 최근 림 족 호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사무총장을 만나 친환경 정책 보조금으로 2,000만 달러(약 262억 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악셀 이사는 "2040년까지 해양 유출 플라스틱을 80% 이하로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선 동남아 정부들의 정책 정비와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