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장맛비의 쉼 없는 반복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갈 때다. 하지만 모든 계절이 그랬듯, 끝은 다가오기 마련. 서둘러 그 끝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강원 춘천시 남이섬. 이맘때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은 출항 시간을 한참이나 앞두고 도착한 탓인지, 인기척조차 없이 고요했다. 배를 기다리며 강변을 걸으니 상쾌한 강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도심의 더위를 잊을 수 있었던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사방에서 물안개가 서서히 밀려왔다.
어디서 왔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다가온 물안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보이던 강변 나무와 선착장 보트를 뒤덮으며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물안개가 서서히 그치면서 저 멀리 산 능선의 굴곡이 그림자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새하얀 벽 뒤에 숨겨놓은 산수화를 한 폭 한 폭 차례대로 눈앞에 펼쳐놓는 듯, 한 편의 마술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