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방송작가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첫 판결이 나왔다. MBC 보도프로그램 '뉴스투데이' 작가 2명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선고를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것인데, 이 선고가 나올 때까지 해당 방송작가들이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지 눈에 선하다. 그 노고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시간강사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나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방송작가로 보냈다. 방송작가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IMF 시기에 겪었다. 방송작가로 입문해 한창 일할 시기였지만, 일이 없어서 굶어 죽을 뻔했다. 굶지 않았던 것은 부모님 댁에 얹혀살았던 덕분이다. 그때 나는 무척 오랜 시간을 백수로 지냈는데, 일이 무척 하고 싶은 나머지 애인을 하자는 유부남 피디 요구에 응하지 않은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만큼 일자리가 절박했다. 또 노동자로서 방송작가의 일자리는 열악했다. 나의 경우는 그러했다.
주지하듯이 방송 프로그램은 피디와 작가라는 두 축을 통해서 제작된다. 하지만 작가는 언제나 '을'의 자리에 위치한다. 같은 프리랜서라도 작가의 고용은 피디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 일할 때, 함께 활동했던 동호회 사람들을 나 혼자서 만났다는 이유로 그만두라고 소리를 친 피디가 있었다. 그는 촬영도, 편집도 혼자 할 줄 모르는 피디였다. 그럼에도 그러했다. 어느 방송사 보도국에서 일할 때는 한밤중에 술을 먹고 전화한 기자에게 목소리를 높였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습지도 않는 해고의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내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 이유는 작가로서 당했던 부당함이 크게 작용한다.
대학원에 진학해 쓰고자 했던 석사논문의 주제는 '방송작가 노동조합의 필요성 연구'였다. 이는 늘 고용 불안정에 시달렸던 탓이다. 하지만 그 논문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노동청과 법원의 방송작가의 지위에 대한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방송작가는 예술가로서도, 노동자로서도 그 법적 위치가 불분명했다. 이제 방송작가가 노동자로 인정받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방송작가의 삶을 즐겼던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희열이 있었고, 프로그램 제작 과정이 어려운 만큼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아보지 않아서 방송국 본사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방송 프로그램의 외주제작 현장은 방송작가 구인난을 겪고 있다. 일하겠다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주,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메인 작가를 하는 친구에게 막내 작가를 구해 달라는 전화를 받아서 학과장 교수에게 연락하고 학생들에게 공지를 남겼지만 단 한 통의 메일도 받지 못했다. 이는 힘든 제작 환경에 비해 그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 것과 힘든 일을 싫어하는 요즘 세대의 특성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방송사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우월적 지위를 가졌던 것은 방송작가와 같은 노동자들의 열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 열정을 다하던 세대는 단언컨대 이제 없다. 만약 지금보다 더 인력난이 심각해진다면 방송 프로그램의 퀄리티는 떨어질 것이 뻔하다. 따라서 각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방송작가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누리는 그 영광조차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