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에 데인 유럽... 원전으로 속속 '유턴'

입력
2022.07.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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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규 원전 전격 승인
벨기에, 원전 폐기 정책 뒤집어..네덜란드도 건설 준비탈원전 선봉 독일도 미묘한 입장 변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원자력 발전(원전)을 대하는 유럽의 태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에 '위험하고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단점 대신, '효율적으로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원전의 장점을 더 중요하게 보는 분위기다.

원전 폐기를 선언했다 이를 뒤집는 국가도,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유럽 내 탈원전 선봉에 섰던 독일에서도 미묘한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600만 가구에 공급"… 영국, 신규 원전 전격 승인

영국 정부는 20일(현지시각) "'사이즈웰C' 원전 개발 프로젝트 신청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총 생산량은 3.2기가와트로, 이를 통해 600만 가구에 저탄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게 사업을 진행하는 프랑스전력공사(EDF) 측의 설명이다. 동부 서퍽스주에서 가동 중인 사이즈웰B 옆에 지어지며, 총 투자금은 200억 파운드(약 31조4,024억 원)다. 영국 정부가 그간 승인을 미뤄왔다는 점 때문에 현지 언론들은 "신규 건설을 위한 큰 걸림돌이 사라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전격 승인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공급을 틀어쥔 데 따른 조치로 볼 수 있다. 전쟁 전 이미 원전으로의 회귀를 선언했지만, 전쟁 후 에너지 위기를 맞닥뜨리면서 본격 속도를 낸 것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3월 에너지 믹스 약 21%(2020년 기준)를 차지하는 원전 비중을 2050년 25%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사이즈웰C 건설 역시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전은 중요하다"는 존슨 총리의 뜻을 차기 총리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신규 건설·수명 연장에 분주한 유럽... 혹시 독일도?

주변국들도 원자력 확대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벨기에는 '2025년까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기존 정책을 지난 3월 뒤집었다. 원전 2기를 2035년까지 가동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계획 수정은 없다'고 확인했지만,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에 입장을 다시 바꾼 것이다. 헝가리는 원자력 생산량을 확대하기 위해 다음 달부터 원전 가동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지난 14일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따른 조치다.

원전을 새로 짓는 국가도 많다. 네덜란드는 지난달 "2개의 신규 원전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폴란드도 첫 번째 원전 건설에 착수했다. 2033년 가동이 목표다.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짙다. 이달 초 유럽연합(EU)이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하면서 원전 확대의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독일은 아직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다만 완강했던 탈원전 기조가 완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최근 정부 측에서 '올해 말까지 원전 3개를 폐쇄한다'는 계획의 재검토를 시사하는 발언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에너지 위기에 따라 원전 확대를 위한 문을 열어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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