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문선명은 부당하게 구금. 석방해 달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외조부로 역시 일본 총리를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가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에게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창립자 문선명의 석방을 요청하며 보낸 서신이 공개됐다. 문선명은 1984년 미국에서 탈세 혐의로 복역 중이었다.
지난 8일 아베 전 총리를 총으로 쏘아 숨지게 한 야마가미 데쓰야(41)는 경찰 조사에서 “기시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통일교를 가져왔고, 아베는 통일교 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며 아베 일가와 통일교의 밀접한 관계를 범행 동기로 밝힌 바 있다.
21일 발매된 일본 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가 공개한 서한을 보면, 기시는 “문 존사(尊師)는 현재 부당하게 구금돼 있다. 당신의 협조를 얻어, 나는 꼭, 가능한 한 빨리, 그가 부당한 구금에서 석방되도록 부탁하고 싶다”고 적었다. 기시의 서명이 확실히 드러나 있는 이 서한의 작성 날짜는 1984년 11월 26일이다. 당시 87세였던 기시는 이미 정계를 은퇴한 상태였지만 매우 간곡하면서도 분명하게 문선명의 석방을 요청했다.
그는 편지에서 문선명을 공산주의와 싸우는 자유의 투사로 묘사했다. “문 존사는 성실한 남성으로, 자유의 이념을 촉진하고 공산주의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평생을 걸고 임하고 있다”라거나 “그의 존재는 현재와 미래에 걸쳐 희귀하고 귀중한 것이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유지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표현했다. 슈칸신초는 이 편지를 보냈던 1980년대는 이미 통일교의 지나친 포교가 사회 문제화하고 있었는데도 기시는 그 교단의 수령을 ‘성실하고 귀중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5년 전 신초의 의뢰를 받아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 수록돼 있던 이 서한을 입수한 저널리스트 도쿠모토 에이치로씨는 “당시 미국 정부가 대응을 협의했다”면서 “전 일본 총리이고 당시까지도 여전히 자민당의 유력자였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답장도 작성한 것 같지만 그 편지는 아직도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기밀 해제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시의 탄원은 통하지 않았고, 문선명이 출소한 것은 이듬해 여름이 되어서였다.
신초는 기시 전 총리가 통일교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 이유가 반공 이념 때문이라고 봤다. 잡지 ‘종교문제’ 편집장인 저널리스트 오가와 간다이씨는 “통일교는 1968년 ‘국제승공연합’을 만들어 반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했다”며 “냉전 중이던 당시는 일본에서도 사회당과 공산당의 세력이 강했고, 기시는 좌익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무엇과도 손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기시는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상공장관과 군수성 차관을 역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A급 전범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냉전을 거치며 미국의 일본에 대한 정책 방향이 바뀌자 다시금 정계에 복귀, 1957년 총리까지 된다. ‘쇼와의 요괴’라고도 불렸던 그는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했다. 1965년 한일 수교 과정에서도 막후에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