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DJ의 외교 성과, 尹 정부가 자꾸 소환하는 이유

입력
2022.07.20 18:30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재차 강조
①한일관계 호시절 향한 절박함 묻어나
② 尹 대통령 애착...기시다 친서에 넣어
③과거 보수정권은 日과 티격태격 잡음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윤석열 정부에서 재차 주목받고 있다. 일본을 찾은 박진 외교부 장관은 18일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장관, 19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회담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과 취지에 따라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거듭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선언을 계승해 취임하면 바로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장담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채택한 이 합의문은 △양국의 경제협력 촉진 △문화 및 스포츠 교류 확대 등 11개항으로 구성됐다. 무엇보다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이 담기면서 한일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진보 정권의 유산인 만큼 과거 보수 정권에서는 평가에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오히려 이 선언을 부각시키고 있다. 왜 그럴까.

①‘한일관계 개선’ 절박함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정부의 의욕과 절박함이 최우선 요인으로 꼽힌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계기로 양국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듬해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에 문재인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카드로 맞섰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벌어졌다.

하지만 정부 의지에 비해 진척은 더디다. 코로나19로 막혔던 ‘김포-하네다’ 항공노선이 복원됐지만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양국관계를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과거사 문제는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대법원의 현금화 판결이 임박했는데도 일본은 “한국 측이 알아서 해법을 찾아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양국의 호시절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관계 개선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됐고 한일 월드컵까지 공동으로 치르며 우호를 다졌다. 다만 일본 측의 별다른 호응은 없는 상태다.

②윤석열 대통령의 애착

윤 대통령의 애착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 공약에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을 실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재임 기간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4월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단장으로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을 일본에 파견해 기시다 총리에게 전달한 친서에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공동 계승 발전시키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③YS부터 박근혜까지... 보수정권 유산 부재

진보 정권의 유산을 강조한다는 건 결국 보수 정권에서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실제 보수 진영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한일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 정치인들의 거듭된 망언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직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일본은 1997년 외환위기를 앞두고 금융지원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2012년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현직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해 일본을 자극했다. 그렇게 냉랭해진 양국관계는 박근혜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뾰족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2014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는데도 싸늘한 표정으로 외면했다. 이듬해 청와대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은 오찬 없이 서먹하게 끝났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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