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힘'을 강조하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평소와 다르게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대한 국장 실시를 밀어붙이고 있다. 야당에서 신중론이 제기되고 국민에게 이유를 설명하라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지만, 오는 22일 각의(내각 회의)에서 '속전속결'로 결정키로 한 것이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촉발될 수 있는 보수층 이탈을 막고, 찬반 논의가 가열되며 발생할 수 있는 국론 분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20일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오는 9월 27일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실시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정에 들어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지난 14일 기시다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겠다고 발표한 지 1주일 만이다. 날짜와 장소는 유족의 의향과 외교 일정 등을 고려해 정했으며, 가까운 시일 내 각의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각의는 통상 화·금요일에 열리는데, 가장 가까운 22일 각의에서 결정이 유력시된다.
이 같은 '속전속결' 처리는 지난해 취임한 후 줄곧 '듣는 힘'을 강조하며 야당과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 온 기시다 총리로선 극히 이례적인 행보다. 야당에서는 국장에 반대하거나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인데,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정부와 자민당의 뜻을 관철하려 하고 있어서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국회) 폐회 중 심사'를 통해서 국장으로 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 대표도 반대는 하지 않지만, 세금을 사용하므로 "기시다 총리가 국회에서 의의와 이유를 정중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공산당, 레이와신센구미, 사민당은 △현행법상 근거가 없고 △고인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억제하고 조의만을 강요한다는 등의 이유로 아예 반대하고 있다.
여론도 국장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NHK가 지난 16~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국장 실시에 대한 긍정 평가는 49%로 부정 평가(38%)를 웃돌았지만 과반수에 달하진 못했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국장 시행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에서 전후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전직 총리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해 연합군 지배 아래 일본의 국권을 회복한 요시다 시게루 한 명뿐이었다. 가장 최근에 장례를 치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를 비롯한 대부분 전직 총리의 장례식은 정부와 자민당이 함께 비용을 댄 합동장으로 치러졌다.
그런데도 기시다 총리가 이례적으로 국장 실시를 밀어붙이는 것은 아베 전 총리 사후 흔들리는 자민당 내 보수층의 이반을 막고, 논쟁이 확대돼 국론 분열로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민영방송 MBS에 출연한 정치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는 "아베 전 총리의 '암반 지지층'이라 불리는 보수층의 이반을 초래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며 "국장으로 세계 각국의 요인이 일본을 방문하면 기시다 총리가 주인공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