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하락이 예상보다 빠르다. 그 여파는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 그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의외의 환경 변화에 시간표가 뒤엉키는 듯한 모습이다. 지금은 원래 민주당에 와신상담의 계절이었어야 한다. 민심이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민주당에 요구한 건 완전한 체질 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 지지율이 썰물처럼 빠지며 요즘 민주당에선 혁신과 쇄신, 반성과 같은 따끔한 단어가 잘 안 보인다. 한 초선 의원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선거 패배 평가 토론회도 지겹다. 윤석열 정부가 저렇게 못하는데 대체 언제까지 평가만 해야 하나."
반성 모드를 어물쩍 건너뛴 민주당은 공격 모드로 넘어간 듯하다. 신중한 중진 의원들조차 대통령 탄핵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입에 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통령실의 지인 채용 논란을 지적하기 위해 "청와대의 공적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며 '탄핵'을 거론했다가 국민의힘의 반발을 샀다.
'가마니 전략'을 쓰자는 목소리도 민주당 내에서 적지 않다. 구태여 뭘 하기보다는 가만히 앉아 정부 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 이익을 누리자는 주장이다.
만약 이런 '가마니 전략'이 통해서 민주당이 대선 이전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것도 없이 다음 선거에서 이긴다면 어떨까. 그건 정치의 퇴행일 것이다.
정권 초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또 있다. 이해 당사자들은 저항하지만 지속 가능성과 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인기 없는 개혁'의 이행 동력이 사라진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5월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금부터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면서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 과제를 야심차게 제시했다. 지지율이 50%(한국갤럽 기준)를 넘었던 시기였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과제들이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초반까지 떨어진 지금 거센 저항이 예상되는 이들 개혁 과제 중 하나라도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지지율이 비교적 안정됐던 문재인 정부도 정권 초인 2018년부터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했다가 실패했다. 당시 정부는 가입자들의 저항이 부담됐던 나머지 뚜렷한 연금 개혁 방안을 내놓는 대신, '현상 유지' 안까지 포함한 국민연금 개혁 시나리오를 네 개나 국회에 제출했다. 개혁안을 선택하는 부담을 국회에 떠넘긴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국회 역시 정부에 "개혁안을 하나만 가져오라"며 심의를 거부해 연금 개혁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얼마 전 여권에서 다시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이 나섰다. 그런데 권 대행은 정부에 개혁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대신 “비록 인기 없는 주제라 할지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여야가 함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정부와 국회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만 하다가 개혁이 좌초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이 역시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숨은 비용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