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과 종 보전을 오래 연구해 온 이항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는 1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침팬지 종 보전과 복지를 위해 다른 동물원으로 '시집, 장가'를 보내야 한다"는 서울대공원의 주장에 "이들을 중성화하는 게 종 보전과 복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일침했다. 이들을 중성화시킴으로써 유전적 가치가 큰 개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올해 3월 서울대공원이 국제적 멸종위기종 침팬지인 '광복이'와 ‘관순이’를 동물쇼를 일삼는 인도네시아 타만사파리로 반출한다는 한국일보 보도(관련기사☞[단독] 서울대공원, 멸종위기동물 또 반출… 국제 인증 위반 논란) 이후 동물단체와 시민들은 민원 캠페인과 집회를 열며 이들의 반출을 반대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서울대공원은 타만사파리 측으로부터 '광복이와 관순이를 쇼에 동원하지 않고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위한 번식용으로 도입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이달 초 유튜브 '오세훈TV'에 광복이와 관순이 반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이들 침팬지는 반출을 위한 검역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먼저 광복이, 관순이가 유전적 가치가 없는 비순혈개체임을 지적했다. 이들은 동부와 서부, 즉 아종(분류학상 종의 하위 단계로 같은 종에서 유전·지리·형태적으로 세분된 개념)이 섞인 침팬지다.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EAZA), 일본동물원수족관협회(JAZA)에선 순혈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해외 종 보전 프로그램은 유전적으로 가치가 높은 개체를 대상으로 정교하게 번식 계획을 세운다"며 "비순혈개체의 번식은 관람용 동물 확보를 위한 것이지 종 보전을 위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대공원은 광복이, 관순이가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에서는 종 보전가치가 있는 개체로 인정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AZA가 운영 중인 침팬지 종 보전 프로그램(SSP) 코디네이터의 자문을 통해 멸종위기종인 침팬지의 중성화를 반대한다는 근거를 들었다.
서울대공원은 당초 광복이와 관순이가 SSP에 가입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도가 나가자 갑자기 가입돼 있다고 말을 바꿨다. 만일 가입돼 있지 않다면 AZA의 침팬지 종 보전 관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SSP 코디네이터는 "정관절제술은 추천하지 않고, 고환적출방법을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을 뿐 중성화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공원은 또 성 성숙이 이뤄진 광복이의 스트레스가 심하고, 현재 지내는 방사장이 열악하다는 점을 반출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공원은 2019년 반출이 결정됐다는 이유로 광복이와 관순이의 환경 개선 등에 전혀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성 성숙으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중성화 수술을 하면 문제 되지 않는다"며 "광복이와 관순이를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 번식시킬 이유가 없다"고 조언했다.